요나서 4장 11절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이스라엘의 대적인 앗시리아에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요나는 맹렬하게 저항합니다. 요나에게 앗수르 민족이란 철저한 타인이요, 나와는 완전히 다른 ‘남’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들 또한 나의 자녀이다.”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그들도 나의 자녀이다.” “내가 그들을 아낀다.”
인생의 연약함이 있다면 스스로의 사랑 없음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을 늘 동원한다는 것입니다. 그 중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 그 사람을 나와는 다른 ‘남’으로 규정하는 것입니다. 나와는 다른 인격체로 규정하는 것입니다. 나와는 다른 사고방식을 지닌 자들로 묶어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사랑 없음은 부끄러움이 아닌 철저히 당연한 것이 됩니다.
한 청년이 사역 이후 모임에서 고백해주었습니다. “홈스테이 하면서 그들을 참으로 사랑하게 되어서 기뻤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그렇게 사랑하게 된 그 가정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이 너무나 마음이 아픈 현실이 되었다. 왜 하나님이 이런 고통을 허락하시는지 이해하지를 못하겠다.”
그렇습니다. 고통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픔도 없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어미의 눈물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오직 사랑하는 사람만이 이해할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위의 고백을 이어가던 청년이 자신의 말을 다시 이어가며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그런 아픔 속에서 나에게 떠오르게 하신 성경의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는 바로 우리 속에 있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이 아닌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바라보시는 주님에 관한 이야기이다. “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벽이 허물어진 청년은 그렇게 주님의 마음을 깨달았습니다. 무슬림이기 이전에 하나님 앞에 지어진 한 사람으로, 예수의 은혜가 필요한 한 사람으로 그들을 보게 되자, 간절한 주님의 사랑을 알게된 것입니다.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니느웨 성읍을 불쌍히 여기시는 주의 사랑을 알지 못했던 요나처럼, 어리석은 우리의 눈을 뜨게 해주시는 그 역사가 동일하게 드러난 것입니다.
홈스테이를 진행한 20명의 청년에게 본래 무슬림이란 ‘남’이요, 타자요. 구원 받지 못한 백성이요. 사고방식에 문제가 생겨버린 이들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숨 쉬는 그 3일의 순간 속에서 벽이 깨어져 버렸습니다. 밥을 먹고 교제하고 차를 마시며 남들과 같은 일상을 보내는 그들을 마주한 그 순간. 이제 그들은 남이 아닌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들 또한 구원 얻어야 하는 백성. 주님이 그토록 마음 아파하시며 찾기를 원하는 사랑의 자녀라는 사실을.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하는 자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총 3박이라는 긴 시간 동안 20명의 청년이 총 11가정으로 파송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주간의 마지막 주일(6월 30일) 7명의 무슬림이 처음 교회로 나왔습니다. 츄크로바 개신 교회에 가장 많은 사람이 새롭게 나온 순간이었습니다 .
그들을 교회로 나오게 한 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 또한 우리 안에 주님 주신 사랑을 알게 된 것일까요? 분명한 것은 함께하는 그 사랑 가운데서 그들이 주님을 궁금해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함께함으로 깨어진 그 장벽 가운데 새로운 사랑이 피어올랐고, 그 안에서 우리는 예수의 향기를 함께 누릴 순간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함께한 일곱명의 청년들 또 기존의 터키 사람들과 함께 예배하는 그 순간 참 많은 은혜가 있었음을 청년들은 고백했습니다. 예배를 통해 아름다운 사랑의 감정을 다시 회복하였다는 간증. 그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간증. 당연하게 여기던 공동체와 예배를 너무나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는 간증. 수많은 고백이 흘러나왔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남이 아닌 우리가 되어 함께 울고 웃으며, 예배했습니다. 그 예배를 통해 우리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처음 예배 나온 그들의 삶 가운데 놀라운 은혜가 임하기를. 3일간의 홈스테이가 먼 훗날 일하실 놀라운 주의 역사를 이룰 아름다운 마중물이 되었기를 소망하고 기도해봅니다.
척박한 불모지와 같은 땅 그러나 분명한 소망을 품고 피어오를 준비를 하는 이 땅 튀르키예, 그리고 아다나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사랑합니다.

[사진 이현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