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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 이름을 선포합니다

작성자: 석상윤

문화 사역, 이틀간 우리 팀이 감당한 사역의 이름입니다. 문화를 통해 교류하고, 소통하고, 그럼으로써 선교의 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관계 사역’, 제가 붙인 이름이지만, 문화 사역의 일시적인 접점을 장기적인 접점으로 이어가는 것입니다. 공통 관심사인 ‘문화 콘텐츠’를 넘어서서, 이제는 그렇게 알게 된 서로가 친구가 되고, 개인적인 관계를 맺게 되어, 복음을 전할 틈을 만드는 것입니다. 매우 긴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기독교 문화에 거부감이 있는 튀르키예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접근법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팀에서 그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 바로 홈스테이와 여행입니다.

며칠간 현지 사람들을 만나며 청년들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예수 믿으세요”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 모든 말을 삼키고 환한 웃음으로, 배려와 헌신으로 그들을 섬겼습니다. 목사님과 전도사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교회’를 입에 담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19명의 청년이 모두 홈스테이에 초대받게 되었고, 함께 문화 행사에 참여한 사람 중 20명이 다음날 함께 가는 피크닉에 참여했고, 갑바도기아로 떠나는 성경지리여행에 10명이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사진 홍윤서]

















여행과 선교는 분명히 다릅니다. 선교이나 여행 같고, 여행이지만 실은 선교인 토·일 이틀간의 사역은 여태껏 해온 선교들과는 다른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몸은 피크닉을 가 고기를 구워 먹고, 미니 체육대회를 하며 사람들과 교제하지만, 매 순간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애써야 했습니다. 갑바도기아의 유적들을 살피는 것은 너무 흥미롭고 재밌었지만, 그것이 선교임을 잊지 않기 위해 계속 마음을 다잡아야 했습니다.



내가 왜 선교를 와서 여행을 하고있지? 와 같은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지금 이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이 정말로 선교가 맞을까? 하는 의문이 밀려올 때마다. 팀원들 모두 ‘하나님이 일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일하실 것이다’ 하고 수없이 속으로 되뇌었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기도했습니다. 부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디 우리의 이 침묵의 선교가, 씨앗이 되어 언젠간 꽃 피울 수 있게 해달라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왔습니다.

현지 사람들과 갑바도기아까지 여행을 왔고, 토요일에 함께 시간을 보낸 뒤 저녁에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들 통해 매우 가볍게 툭 한 마디를 그들에게 던졌습니다. “한국사람들은 내일 아침에 예배를 드릴 건데, 오고 싶으면 와서 참관해도 괜찮다.” 그 말을 전하는 선생님들의 마음이 얼마나 떨렸을지 상상이 갑니다. 그리고는, 우리 팀은 함께 기도했습니다. 부디 이들의 발걸음을 인도해달라고, 관계 맺은 이들이 우리의 예배 가운데로 참여하게 해달라고, 마음의 문을 열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새벽까지 모여서 그동안 준비한 예배와 공연을 다시 한번 연습하고 맞춰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현지 선교사님들은 이러한 관계 사역을 위해 아주 오랜 시간 공을 드립니다. 공을 드려도 열매를 맺을지 알 수 없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잘못 복음을 전했다가, 아예 이 나라를 떠나야 할 수도 있기에, 선교사님들을 무슨 상황이 있어도 끝내 ‘선생님’으로 남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단기 팀이기에, 조금 상황이 달랐습니다. 우리가 기독교인인 것을 밝혀도 리스크가 크지 않고, 그들과의 관계가 깨어져도 사역 전체가 흔들리진 않습니다. 그래서 시도할 수 있었던 사역, 그 모든 문화 사역과 관계 사역을 통해 준비해 온 ‘복음 사역’이 예정된 튀르키예의 주일이 밝았습니다.

주일 아침 7시 반에 모여 8시에 시작할 예배를 함께 준비했습니다. 찬양, 위십, 무언극, 설교 순으로 예배 순서를 정하고, 정해진 시간이 되어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예배 시작 전 선교사님은 청년들에게 말했습니다 “누구에게 잘 보이려는 예배가 아니라, 그냥 여러분이 전심으로 예배를 드리면 된다.” 한국말로 준비된 예배를 현지 사람들이 온다고 한들 알아 들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 저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떠올렸습니다. 방언으로 각 나라에서 온 사람들 모두에게 복음을 들리게 하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의 예배도 들려지고 이해되게 하실 것이다. 라고 청년들과 이야기하며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함께 찬양하며,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맨 앞에 앉아서 찬양했지만, 뒤에서 청년들의 찬양과 울음소리가 뒤섞여 계속 들려왔습니다. 찬양이 끝나고 원래 예정된 워십과 무언극 음원이 갑자기 문제가 생겨 바로 단 위에 올라갔습니다. 계획에 차질이 있었지만, 마음은 평안했습니다. 앞을 보니 6명의 튀르키예 사람이 보였습니다. 그중 한 명을 제외하고는 다 무슬림이었습니다. 설교를 맡은 저는 선교를 준비하면서부터 지금까지 팀원들과 순서대로 봐온 에베소서 4장 17–24절을 본문으로 정했습니다.

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한국어로 한번 읽고, 영어로 한번 읽었습니다. 그러고는 이끄심을 따라 말씀을 전했습니다. 전날 밤 설교를 준비하며, 따로 설교 원고를 준비하지는 않고, 그저 본문을 계속 읽고, 영어로 된 본문을 읽는 연습을 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며 제 안에 주신 생각은, ‘이미 준비는 마쳤다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간의 문화 사역과 관계 사역은,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들이붓는 듯한 허망함이 있었지만, 그 물이 강물처럼 차고 차, 강을 막은 둑 언저리까지 차올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년들이 순종으로 차오르게 한 그 물, 이제 그 둑을 터뜨릴 일만 남았고, 그것이 제가 맡은 역할이었고, 하나님이 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설교 내내 그 이름을 얼마나 외쳤는지 모릅니다. 그 어떤 옷을 입어도, 어떤 삶의 가치로 자신을 무장하여도, 어떤 종교를 믿는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삶은 구원받을 수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입고 그분을 믿으면, 진정한 구원과 자유와 행복이 우리 삶에 흘러넘친다는 말씀을 한국말로 전했습니다. 그리고 선교 내내 저희 팀이 가장 많이 불렀던 찬양, 팀룩워십의 ‘함께 지어져 가네’를 부르며, 서로 축복하고,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시간을 주셨습니다. 예정되지 않았지만, 주신 마음을 따라 진행한 순서입니다.

설교하며 예수그리스도를 외치는 그 순간, 저는 튀르키예 사람들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국 청년들이 튀르키예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 순간, 저는 그들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한 줄기 빛을 보았습니다.









예배 순서를 마치고 우리가 잘 아는 무언극 ‘Everything’을 공연하는 순서를 가졌습니다. 한국말을 못 알아들을 것을 생각해 준비한 우리 팀의 또 다른 복음입니다. 현지에서 여행 중인 한국 형제가 선교 내내 우리 팀을 도와줬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있어 전날 밤 급히 한 배역을 부탁했습니다. 부담스러웠을 텐데도 해보겠다고 해주었고, 그렇게 함께 만든 무언극은 정말로 복음을 너무 잘 담아내 다시금 현지인분들의 눈에 눈물이 맺히게 했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우리 안에 그 구원의 기쁨을 표현하는 워십팀의 공연으로 예배를 마쳤습니다. 한 청년에 후에 모든 예배의 과정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모의고사 때 늘 70점 맞다가, 시험 때 100점 맞은 기분이에요” 그 표현에 모두 웃었습니다. 70점도 채 되지 않는 우리를, 100점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그 가운데 있었음을 저도 보았습니다. 몇주전만해도 삐걱대던 무언극과 워십이, 너무 아름답게 현지 사람들 앞에서 펼쳐졌습니다.












후에 선교사님을 통해 들을 내용이지만, 현지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말하며 마음이 움직였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함께 자리한 선교사님들도 많은 은혜를 받고, 현지 사람들에게도 우리의 마음이 전해진, 정말 기적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이 선포될 때 울음을 터뜨린 우리 청년들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엉엉 울던 그들의 얼굴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보며, 당혹스러워하면서 함께 울고있는 현지 사람들의 얼굴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며칠의 사역 끝에 그 이름이 선포되었을 때, 지금까지 우리가 한마음으로 그 이름을 소망했음을 알았고, 제 입술을 통해서지만 실은 모두 함께 그 이름을 그들에게 선포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그 호텔의 이슬람 기도실은 예배당이 되었고, 우리는 교회가 되었고, 지금껏 지나온 그 모든 시간과 순간들은 선교가 되었습니다. 이 특별한 은혜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현지인들과 예배를 드렸다는 사실에 누구보다 행복해하면서도, 선교사님은 말했습니다.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전해진 그 복음이, 씨앗이 되어, 끝내 열매 맺을 수 있도록, 선교사님들의 그 오랜 헌신과 선교가, 빛을 볼 수 있도록, 우리는 앞으로 기도할 것이고, 이 글을 읽는 성도님들도 함께 기도해 주길 소망합니다. 바울 한 사람을 통해 로마 온 지역에 복음이 전해진 것처럼, 청년들을 통해, 성도님들을 통해, 교회를 통해 심은 그 복음의 씨앗이, 튀르키예 땅이 다시 주님 품으로 돌아오는 역사의 발걸음이 되길 꿈꾸고 소망합니다.

원문: 서울광염교회 광염게시판 (2024.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