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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멍에를 지고 예수께로 나아갑니다

작성자: 석상윤

오늘도 우돈타니에서 은혜 가운데 사역을 마쳤습니다. 오늘은 교회 주변 공터에서 버스킹과 공연을 하고, 음식을 나눠주며 복음을 전하는 전도 축제 사역을 했습니다. 떡볶이와 어묵 200인분을 우리 팀 청년들이 준비하고, 태국 현지 성도님들이 태국 음식들을 준비해서 함께 이웃들과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진 석상윤]



우돈타니 현지는 문구류를 구하기가 어려워서 박스로 청년들이 급하게 만들었다. 직접 쓴 태국어 문구.

팀원들이 멋있는 표정으로 사진을 찍자고 했는데, 부장님만 한것 같은 착각이 든다. 선교사님 자녀들도 함께 찍었다.





새로 지어준 한국어 이름. 티셔츠 색이랑 똑같은 이름 ‘바다’





첫 공연은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끄는 케이팝 팀의 무대로 시작했다.













버스킹이 끝날 때 쯤 비가 조금식 오기 시작했다

비가 많이 와서 실내로 공연장을 옮겼다. [사진 이현권]



무언극이 시작할 때 쯤 날이 더 흐려지고 비가 굵어졌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무언극 스토리와 딱 맞아 떨어지는 은혜가 있었다.






함께 태국어로 찬양을 부르며 마무리했다. [사진 석상윤]








‘청년’ 그리고 ‘선교’, 듣기만 해도 가슴 뛰는 단어가 아닌가 싶습니다. 두 단어가 합해지면 더욱 그렇습니다. 20대 청춘을 보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청춘들이 모여서 함께 선교를 떠나, 그곳에서 찬양을 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청년의 때는 고생도 추억이라는 말도, 돌도 씹어먹을 나이라는 것도, 이곳에서 청년들을 보고 있으면 나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 산 티셔츠가 땀으로 축축해져도, 자꾸만 날파리가 날아들고 여기저기서 모기가 물어도, 진흙탕에 뒷바퀴가 빠진 봉고차를 밀다 신발이 잔뜩 더러워져도, 여전히 청년들의 웃음소리는 멈출 기세가 보이지 않습니다.

청년의 때에 해외로 복음을 전하러 갈 수 있는 것은 참 기쁜 일이고, 또 그것이 교회와 성도님들의 한없는 사랑으로 이루어진 것은 참 감사한 입니다. 다음세대를 지원하는 그 관심과 사랑이, 오늘도 이 선교 현장에서 청년들을 자라게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청년들의 선교가 마냥 행복하고 즐거울 것이라 여길 수 있지만, 사실 청년들의 선교는 유익하지만, 항상 즐거운 것은 아닙니다.

“이제 합심하여 우리 예배를 합시다

온 맘으로 모든 전심을 다해

각자의 삶 멍에를 지며 흩어졌던 마음 다시

성령이 주신 한 마음으로”

_welove <합심>

청년봉사단을 준비하며 정한 저희 팀의 주제 찬양의 가사입니다. 청년봉사단을 준비할 때도, 또 선교지에 와서도 이 찬양을 자주 함께 부르는데, 잘 들어보면 찬양하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항상 ‘멍에’라는 가사에서 약간 흔들립니다.

멍에, 말 그대로 소에게 씌우는 농기구입니다. 다른 말로 짐이고, 또 다른 말로는 부담입니다. 농사도 안 지어본 청년들이지만, 멍에라는 단어는 그들의 마음을 울립니다. 잊고 잊던 삶의 짐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조금만 찬양을 불러보아도, 눈에 눈물이 맺힙니다.

마냥 행복할 것 같지만, 막상 선교에 와서 청년들과 대화를 나눠보면서 그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히려 그 웃음과 열정 아래, 조용히 숨겨진 끝없는 흔들림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청년은 신앙이 흔들리는 와중에 붙잡은 마지막 끈이 선교였고, 또 어떤 청년은 실패에 밀리고 밀려 도착한 곳이 이곳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겐 과거의 상처들을 딛고 다시 용기를 내는 새출발이기도 했고, 육체의 연약함을 가지고도 나아온 청년도 있었습니다. 입대를 앞둔 청년, 스스로가 자꾸만 부족하다고 느끼는 청년, 가정의 아픔이 있는 청년, 마음의 아픔을 겪는 청년. 모태 신앙이지만 하나님을 모르겠다는 청년, 사회에 나아가는 것이 두려운 청년, 지금 가는 그 길을 포기하고 싶은 청년, 사실은 모든 관계가 너무 힘든 청년. 지금까지 만나고 또 함께 선교하러 갔던 청년들은 대부분, 그렇게 삶의 멍에에 휘청이고 흔들리는 이들이었고, 그럼에도 버티고 서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선교에 온 청년들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청년이 그렇습니다.

각자 흔들리는 이유는 다르지만, 각자의 흔들림 속에 하나님이 인도하신 곳은 동일하게 선교지였고, 그곳에서 청년이 누리는 행복은, 실은 즐겁고 웃음이 넘치기만 하는 행복이 아니라, 그 아픔 가운데서 예수님을 붙잡고 만나고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조금 쓰라린 행복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교회와 성도님들의 사랑으로 이들은 이곳에 왔고, 흔들리는 삶을 뒤로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마음을 모았지만, 이들은 이곳에서도 계속해서 흔들리는 삶을 마주합니다. 눈은 세상을 향하지만, 실은 계속 세상이라는 거울 속에서 자신을 비춰봅니다. 웃고 있지만, 우리 청년들은 사실 더 많은 순간 안에서 울고 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선교가 행복이 아닌 것이 아니라, 그런 이들이기에, 그런 시기이기에 선교가 더 큰 의미를 가집니다. 끝없이 흔들리는 삶 가운데서, 이들이 선교지에서 마주하는 것은 그것을 극복하는 특별한 방법이 아닙니다. 이들은 동일하게 자신들처럼 흔들리는, 아니 사실은 더 많이 휘청이는 이들의 삶을 보게 됩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위해 구제하면서, 청년들은 자신의 흔들리는 삶이 아니라, 그 흔들리는 삶너머 지금껏 지탱해 오신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먼 곳으로 향했지만, 많은 돈을 썼지만, 그 먼 길을 돌아 만나는 것,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나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 또 내 안에 있는 예수님의 사랑을 만나러 온 것입니다. 왜 굳이 그 멀리까지 가서 만나느냐고 할 수 있지만, 실은 그 사랑을 만날 수만 있다면, 아무리 먼 길을 돌아가도 아깝지 않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교회가, 성도님들이 다음세대 청년들에게 귀한 재정으로 후원해 준 그 사랑, 그것은 단지 청년의 시절 선교를 가는 행복과 기쁨을 체험하게 해주는 것이 아닌, 그 한없이 큰 스케일의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 청년들에게 알려주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예수님이 너를 이렇게까지 사랑한다고, 이 많은 사람이 기도로 재정으로 후원해서 너 한 사람 여기로 보낼 만큼, 너를 사랑한다고, 알려주는 일이라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그거 하나면, 청년봉사단은 충분히 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내게 유익하던 것을 다 해로 여길 만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참으로 가장 아름답고 고상합니다. 우리 청년들이 이곳, 태국 땅에서 그 주님을 더 선명하게 만나길 간절히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끝없이 흔들리는 삶 가운데, 어쩌면 평생 흔들려야 할 삶 가운데, 유일하게 붙들 한 분, 예수님을 발견하는 시간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청년들은 흔들립니다. 하지만 그들 아래에 그들을 지키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우리를 지키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그분 안에 있기에, 그분 안에 있는 교회 안에 있기에, 다음세대는 안전합니다. 그리고 그들 안에는 빛나는 찬란한 소망이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원문: 서울광염교회 광염게시판 (2025.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