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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지어져 가네, 선교의 마지막 걸음

작성자: 석상윤

하나님 은혜 가운데 튀르키예 선교를 잘 마쳤습니다. 저를 포함한 모든 청년에게 한량없는 은혜를 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늘 우리가 엎드리고 구하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부어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찬양합니다.

시차 적응을 못 한 것인지 새벽에 일어나 튀르키예 선교 마지막 글을 다듬고 있습니다. 청년들에게 마음에 감동을 따라 글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읽다 보니 또 제 안에 그 은혜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은혜의 시간을 떠올릴수록, 그 은혜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준 성도님들과 교회의 사랑이 함께 떠오릅니다. 튀르키예 땅을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성도님들도 있을 텐데, 그럼에도 다음세대에게 그러한 기회를 주고, 응원과 격려와 기도를 아끼지 않아 준 성도님들을 향한 깊은 감사와 존경이 제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님의 사랑임을 느낍니다.

제 말보다 직접 다녀온 청년들의 글이 더 그 은혜의 시간을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청년들이 직접 쓴 글을 이곳에 옮깁니다. 문체와 말투는 각각 다르지만, 튀르키예 청년 봉사단 안에 흘러온 은혜가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에게 동일하게 전해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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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또래 조성아]

“우리는 주의 움직이는 교회, 이곳은 주님을 위한 자리, 내가 기도하는 모든 땅 위에서 하나님 예배받을 그날을 고대하네.”

비행기를 타고 튀르키예 땅으로 향하는 동안 팀원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팀원들과 저를 비교하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저 팀원은 신앙이 정말 성숙하구나. 나는 그렇지 못한데….’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부터 우울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사역을 시작하고도 비교는 계속되었습니다.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99%인 현지 특성상 직접적으로 복음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현지인들과 친밀한 관계를 이어가면서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말씀을 전하는 방법의 전도를 해야 했던지라 현지인 분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게 중요했습니다. 튀르키예 현지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 말을 거는 팀원들이 부러웠습니다. 외국인과 긴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눠야 하는 상황이 처음이라서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마음이 어려웠습니다.

앙카라에 도착한 후 믿음교회에서의 첫째날 기도회 시간에 선교사님께서 “우리가 한 몸 된 교회 되기를 방해하는 원인 중 하나는 바로 부정적인 생각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달라고 함께 기도합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의 마음을 들킨 것 같았고 제 안에 있는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회 내내 입이 열리고 혀가 움직이면서 진정성 있는 기도가 흘러나왔습니다.

한 몸 된 교회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한마음으로 서로를 아끼며 미움, 시기, 질투, 비교를 하지 않아야 함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제가 속해 있는 공동체(교회, 지구촌 등)를 위해 기도하며 그들을 긍휼히 여기며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한 몸이 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에서의 문화 사역이 끝났습니다. 아쉬움도 남지만 사역을 잘 마무리하고 튀르키예 땅을 위해 기도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청년들을 위해 항상 여러 가지로 사랑해 주시는 서울광염교회 성도님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합니다.

[01또래 임채준]

안녕하세요. 튀르키예 선교 2팀 청년 54교구 임채준입니다. 저희 팀은 지난 월요일 사역을 떠났고, 지금은 모든 사역을 마무리했습니다. 성도님들의 사랑, 기도 그리고 감사함으로 은혜 많이 누리고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주님께 받은 은혜를 나눠보려 합니다.

튀르키예 땅은 복음을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없는 땅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말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이 이렇게 조심스럽고 직접적으로 막히는 일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문화 사역을 통해 주님을 전했습니다. Kpop팀, 요리팀, 놀이팀, 만들기팀으로 구성되어 프로그램을 만들고 현지 분들과 계속 교류했습니다. 직접적으로 주님을 말할 수 없기에 우리의 모습을 통해 주님이 누구인가 궁금해하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조금 더 웃고 한 번 더 말을 걸려고 노력했습니다.

매일 준비한 프로그램을 마치고 ‘믿음교회’로 향했습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예배를 드렸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교회 근처에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 술에 취한 사람 등 유흥과 향락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척박한 세상 속 한 가운데 있는 교회에서, 또한 인가되지 않은 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그 순간이 참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땅인 이 튀르키예 땅에 복음이 퍼져나가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하는데 직접적으로 오늘 사역 가운데 주님의 복음을 전하지 못하였지만, 우리의 모습을 통해 그리고 주님 안에서 하나 되므로 삶의 예배를 드린 것 같고, 그로 인해 주님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느껴졌습니다. 참 감사했습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만이 예배가 아닌 일상 가운데에서 예배를, 다시 말해 삶의 예배가 무엇인지 직접적으로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주님께 그리고 성도님들의 아낌없는 사랑에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01또래 정동은]

여태 해왔던 전도 활동들과는 달리 이번 튀르키예 단기선교에서는 예수님을 직접 전하지 못했다. 그래서 앞선 사역 일정 동안 문화 교류를 하며 친해지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일지 고민하기도 했다. 분명 주일 예배에 초대한다는 일정을 알고 있음에도 “이렇게 이슬람으로 큰 성벽을 지은 국가에서 과연 초대한다고 올까?” 하는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번 선교는 예수님을 전하는 것보단 공동체 안에서 하나가 되는 감동을 받는 선교구나” 하는지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주일 아침 우리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예배 시간에 친해진 튀르키예 분들을 초대할 때, 앞서 의문을 가졌던 것이 부끄럽게도 초대에 응해주신 분들이 계셨다. 단 한 번의 예수님을 전할 수 있는 그 자리에서 온 마음을 다하여 나의 예배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며 하나님께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예배가 끝나고 갑바도기아의 지하도시를 보러 갔다. 그곳은 아주 오래전부터 배척받는 사람들이 숨어 살던 곳이었다. 로마제국 시절에는 그곳에 여러 그리스도인이 숨어들기도 했다. 지하도시는 복음을 가르치고 전파하며 오늘날 우리가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세상 끝까지 전파할 수 있게 해주었다. 처음 도시가 지어질 때는 그리스도인이 사용하지 않았다. 그 도시에는 복음이 없었고,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그곳을 왜 만드셨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곳이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피난처가 되며, 우리에게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번 선교 과정 중 선교사님께서 “우리의 하나 됨은 샐러드 같은 것이다.” 고 말해주신 적이 있었다. 우리가 샐러드의 구성품이 되어 서로 다른 맛과 특성을 가진 채소들이 모여 하나의 맛있는 샐러드가 된다는 것이다. 채소들은 각각 수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다르고, 보관할 수 있는 기간도 각각 다르다. 세상 많은 것을 보며 “이걸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나?” 하는 의문을 가질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이 지하도시처럼 결국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거라고 믿고, 하나님의 웅장한 계획을 비록 내가 보지 못할지라도 샐러드의 수확하는데 오래 걸리는 채소처럼 오랫동안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을 거 같다. 하나님의 계획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나에게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주시는 귀한 튀르키예 단기선교였다.

[03또래 김민규]

나는 전공 때문에 튀르키예에 지역에 대해 배우는 일이 잦았다. 전공으로 배우면서, 그리고 어릴 적부터 공부하면서 드는 생각이 이들은 왜 기독교라는 신앙을 지키지 않고, 왜 이슬람을 선택했는가? 라는 순수한 궁금증을 갖고 있었지만, 당시 중, 고등학생 때에는 일반 학교에서 선생님께 쉽게 여쭤볼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었고, 교회에서 해주는 답변 또한 명쾌한 해답을 얻지 못해 나 스스로 깊이 생각을 해보았다.

생각해 본 결론은 ‘기독교가 타락해, 기독교 자리를 이슬람이 오게 되었다.’라는 결론을 내렸고, 이 또한 역사책에서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또 꼬리 물게 된 궁금증은’그러면, 사람들은 기독교를 지키고자 했었을까? 아니면 순응하여 따르게 되었을까? ‘라는 순수한 질문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카파도키아를 가게 되었을 때, 이에 대한 답을 바로 가질 수 있었다.

지하도시에 있는 옛 교회에서 선교사님 통해 알게 된 사실들에 난 비로소 뒤통수를 제대로 맞아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다. ‘이들도 비록 기독교 국가는 무너졌어도, 지하에서 신앙을 지키고자 하였구나!’라는 부분을 여태 보이지 않은 이후의 이야기, 로마가 국교를 기독교 받아들이기 전 탄압하던 시절까지만 알고 그 이후를 몰랐던 것이었다. 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왜 여태 어려웠을까… 전 국민 전부 즉, 100%가 기독교를 믿었던 과거를 뒤로하고 타락해, 이후 이슬람이 오게 된 것을 보니, 사사시대가 문득 떠올랐다.

또한,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메흐메트 2세의 어머니가 기독교인이고, 성을 함락하게 만든 대포 제조한 사람 또한 기독교인으로, 기독교가 기독교 국가를 멸망시켰다는 선교사님의 말씀을 듣고, 반성이 크게 들었던 것 같았다.

하나님을 찾고, 사사를 보내어 평화의 시간을 갖고, 또다시 우상에 빠지고, 또 하나님을 찾아 회개하는 도돌이표와 같았던 시대가 과거에는 성경에 나오는 사사시대부터, 중세에는 십자군 전쟁과 이후 암담한 중세 유럽, 그리고 이어서 지금에 이르러 반복이 되지 않았나 싶다.

한때 1970~80년대 대한민국에도 튀르키예처럼 100%는 아니었지만, 다수가 하나님을 믿고, 울부짖으며 회개하고, 하나님 한 분만 찾아 하나가 되었던 과거에 있었지만, 이제는 교회가 여러 비난을 받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의 모습을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이 든다. 역사에서는 반복하였지만, 이 순환고리를 우리가 과거를 보고 지금을 돌이켜 돌아가야 함을 통해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생각이 크게 들게 되는 선교가 되었던 것 같았다.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 함께 지어져 가는 기독교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99또래 최민하]

안녕하세요! 54교구 청년봉사단 최민하입니다. 선교에서 행한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한 감동과 감격과 감사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선교한 것을 생각해 보면서 디모데전서 1장 12절이 떠올랐습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저는 해외로 나가는 것이 처음이고, 선교 역시 처음입니다. 평소에도 가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상황으로 선교를 가기가 어려웠고, 또 지금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로 준비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해외선교에 가도록 상황과 마음을 열어주시고, 준비하시고, 함께할 수 있도록 능하게 해주셨음을 고백합니다. 또한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충성되이 여겨주심으로 요리사역 팀장을 맡겨주셨습니다.

요리 사역하면서 여러 가지 배우고 느낀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그리고 묵묵히 있어 주는 것이 정말 큰 힘이고, 큰 사랑이라는 것임을.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음성이, 정말 큰 힘을 주시는 사랑의 음성임을 느꼈습니다.

청년 54교구 예배 시간에 선교에서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서 이헌택 목사님을 통하여 들었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누가복음 17장 10절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그렇습니다. 튀르키예 땅에 아주 작은 일을 하고 왔습니다. 하지만 분명 하나님께서는 크게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맡기신 튀르키예 선교는 끝이 났지만,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것을 제게 맡기실 것입니다. 그때에도 튀르키예 선교 때처럼 무익한 종이라 고백하며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자로 준비하고 싶고,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함께함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기쁨과 이웃의 기쁨이 되는 존재로 살아갈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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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를 하며 청년들이 자라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저 또한 자라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그 자람은, 대체로 ‘어느새 돌아보니’라는 말이 붙습니다. 우리는 분명 자라지만, 그 자람은 시시각각 눈에 보이고 나타나는 자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 자라고 있습니다.

그것은 튀르키예 땅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곳에서 복음의 씨앗이, 자라고 있고, 그곳에 있는 귀한 주님의 교회들도, 보이지 않지만 자라고 있습니다. 어느새 돌아보면, 그 자람이 눈으로 보이고, 모든 이에게 느껴지고, 함께 그 기쁨을 누릴 줄 압니다.

튀르키예 만의 이야기는 아니겠지요. 동일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이 한국 땅, 서울광염교회와 그 안의 모든 성도님 역시, 자라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일지라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 안에 거하면, 그분이 우리를 자라게 하십니다. 튀르키예, 형제의 나라라 불리는 그곳, 바울이 사랑한 그곳, 그곳을 자라게 하시는 주님의 사역의 한 부분을 보고 느끼고 경험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동일하게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그렇게, 주님의 몸 되기로 무릎 꿇은 백성들이, 이 땅에서도, 저 땅에서도, 곳곳에서 자라, 함께 지어져 간다는 것, 그렇게 우리가 주님의 처소, 그분의 성전을 지어가는 귀한 사역을, 그 누구도 빠짐없이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감격케 합니다. 동일한 은혜가,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흘러가길 소망합니다.

[사진 홍윤서]

원문: 서울광염교회 광염게시판 (2024.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