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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성숙한 행복의 첫 지점

작성자: 이재훈

# 성숙한 행복의 첫 지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립보서 3장 14절)

빌립보서를 쓰는 바울은 감옥에서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삶의 끝에 서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삶을 정리하는 듯한 모습은 아닙니다. 여전히 푯대를 향하여 달려갈 것을 다짐하는 것이죠. 이 세상에서의 삶 그 너머, 부활 소망을 품고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바울의 삶은 이곳에 갇혀 이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봉사하며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여전히 힘차게 달려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팔에서의 하루하루는 특별합니다. 우리를 이곳에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매일같이 충만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의 고통을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신뢰하며 매일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특별한 은혜를 경험한 네팔, 그러나 머지않아 우리는 다시 이곳을 떠나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 해나가야 할 일들, 다시 마주해야 할 힘든 상황, 쳇바퀴 굴러가는 듯한 일상. 마치 특별한 경험은 네팔을 떠나는 그날 아련한 추억 속에 남겨두고 돌아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우리의 네팔에서의 경험이 이대로 끝나버리지는 않을 것임을 확신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넘어 부활의 소망으로 삶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 또한, 우리가 마주한 상황을 넘어서서 부활의 소망으로 매일을 새롭게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네팔에서의 하루 하루가 먼지 쌓인 추억의 한 장면이 아니라, 매일 새롭게 샘솟는 소망의 마음으로 우리의 삶을 채워 줄 것입니다. 평범한 삶 속에서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더욱 황홀하고 포근하게. 우리를 안아줄 것입니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 먼 훗날 우리가 다시 만나 삶을 나눌 때 “네팔에서의 행복이 지금까지 여전하네”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현재를 떠나고픈 가슴아픈 추억 앓이가 아닌, 오늘날 성숙한 행복의 첫 지점이었음을 기쁨으로 나누게 될 것입니다.

# “한국 가서 돈 벌고 싶어.”

우리에게 네팔은 은혜가 넘치는 곳이지만, 이 땅을 평생 살아가는 네팔 사람들에게는 생존의 문제가 걸려 있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라는 것을 처음 느꼈습니다. 젊은이 예배에서 드럼을 쳤던 나자렌 교회 보육원 출신의 벤자민은, “네팔을 벗어나 다른 나라에 가서 돈을 벌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네팔은 좋지만, 앞으로 결혼을 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다니엘은 “네팔에 많은 사람이 외국에 나가서 돈을 벌기위해 준비하고 있다. 그 중 한국에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 경쟁이 치열하다”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우리에게 행복한 추억을 쌓게 해주는 네팔이 네팔의 많은 젊은이에게는 떠나고 싶은, 떠나야만 하는 곳이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를 선교사님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네팔에서는 하루 10시간씩 일주일에 한 번을 쉬면서 일을하면 대부분 한화로 10-15만원을 정도를 임금으로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이나, 유럽으로 돈을 벌러 가면, 아무리 못해도 한 달에 2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것입니다. 1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해외로 나가면 한 달이면 벌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네팔의 젊은이들은 다른 나라로 가기 위해 기회가 닿는 데로 도전하고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벤자민도 한국으로 가는 근로 비자를 얻기 위해서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나자렌 교회 청소년 사역이 있던 지난 밤, 벤자민이 현재 머물고 있는 나자렌 교회 보육원 단칸방에 초대해주었는데, 그곳에 한국어를 공부하는 흔적이 보였습니다. 한국어 책이 있고 책에는 여러번 펼쳐봤는지 책이 헤져 있었습니다. 또 간단한 회화도 꽤 할줄 알았습니다. “한국에 가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시험을 보고 인터뷰를 통과해야 한다”고 합니다. 모두가 절박하게 경쟁에 달려들기 때문에 시험도 거의 만점을 받아야만 다음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합니다. 벤자민은 고작 몇 점의 차이로 시험에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으로 가고자 하는 소망을 져버리게 되었죠. 그래서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아랍권 국가로 가서 돈을 벌겠다는 것입니다. 비자가 나오는 데로 가니, 몇 달 안에는 1살 때부터 나고 자란 이 나자렌 교회 보육원을, 카트만두를, 네팔을 떠나게 됩니다.

# 네팔인의 저력

벤자민은 이전에 영국 육군 모병에 도전했다가 떨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새롭게 안 사실은, 영국 육군이 네팔에서 용병을 고용해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영국 육군에서 네팔 사람들을 자국의 군인으로 모집해 갈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선교사님께 여쭤보니, 이와 같은 네팔 용병을 ‘고르카 용병’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영국 군에 편입이 되어 시민권을 수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네팔의 젊은이들이 영국 육군에 들어가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고 합니다. 영국 육군이 되는 것을 인생의 성공으로 여길 정도라고도 하죠. 선교사님은, “고르카 지역에서 벌어진 영국과의 전쟁에서 네팔 군인들의 용맹함이 대단해 영국군이 오히려 네팔 군인들과 손을 잡게 되었다고 이야기해 주십니다. 옆에서 함께 듣고 있던 육군 장교 출신의 오태헌 청년도, 군대 정신전력 교육에서 고르카 용병의 용맹함과 전투력에 대해서 들어보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네팔 고르카 군인은 역사적으로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고, 지금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최고의 용병 부대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며칠간 네팔 사람들을 경험하며, 참 순한 민족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세계 최고의 전투력을 가진 군인이 네팔의 용병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네팔 사람들은 국가가 마련해주는 삶의 여건이 열악하고 부족할 뿐이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저력은 대단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네팔 사람들의 가치를 알아보고, 자국의 시민들의 치안과 안전을 책임지는 싱가폴 경찰에도 네팔인들을 고용한다고 합니다. 벤자민은 자신의 네팔 친구가 싱가폴 경찰에 있다고 이야기해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편으로는 네팔의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네팔의 젊은이들이 네팔을 떠나 다른 나라에 소망을 두고 있는 현실을 말입니다.

선교사님은 실제로 네팔의 가정이 해체되는 이유 중 하나로 해외 노동을 꼽았습니다. 가족 중 일부가 해외로 돈을 벌러 가서 수 년이 지나도록 가족과 재회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자렌 교회의 ‘히말’이라는 어린이는 아버지가 안계시고 어머니 손에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일한 가족 어머니마저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돈을 벌러 가셔서 10년이 넘도록 부모님을 보지 못하고 보육원에 맞겨져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해외로 돈을 벌러 10년 이상을 나가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합니다. 워낙에 네팔에서의 삶이 어렵다보니, 이렇게 경제적인 이유로 가족이 해체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잘 사는 나라에 가서 돈을 벌어 네팔에 있는 가족을 부양하도록 하는 것”을 가정 안에서 은연 중에 교육받는 다고도 합니다. 네팔의 사람들은 정말 세계적으로 뛰어난 저력을 가지고 있지만, 정부의 지원과 역량이 부족한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귀한 보물을 담은 그릇이 참 아쉬운 상황인 것입니다.

# 질그릇에 담긴 보석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장 7절)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질그릇 같은 우리에게 놓여졌음을 이야기 합니다. 우리의 부족함에도 우리가 귀하게 여겨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질그릇 같이 부족한 우리에게 심어주신 귀중한 복음의 보석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도 네팔은 보기에 참으로 질그릇 같은 나라입니다. 우상숭배가 가득한 나라, 경제적으로 너무나 가난한 나라. 그러나 그 안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만난 다니엘과 벤자민과 같은 청년들, 그리고 네팔의 믿는 청소년들과 어린 아이들. 믿음의 보석과도 같은 이들이 있기에, 우리는 네팔을 사랑하게 되고, 네팔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곳에 희망이 있음을 소망하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이 심기어 주신 보물들을 통해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스리스티스쿨, “축제”

네팔의 보물이 우리가 어제 방문했던 기독교 학교, 스리스티스쿨에 가득 모여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스리스티스쿨에 다시 방문해 전교생을 위한 축제의 장을 열었습니다. 지난 밤 청소년 사역에서 한 소녀가 울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날이 ‘컬리지’로 들어가는 시험 점수가 발표되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소녀는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눈물을 왈칵 흘린 것이죠. 네팔의 교육은 1학년부터 10학년까지를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포함한 교육과정으로 두고 있습니다. 주 네팔 대한민국 외교부에 따르면 네팔 교육 제도는 초등교육으로 7년, 중등교육으로 3년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뒤로 2년은 고등교육인데 이를 ‘컬리지’라고 부릅니다. 이 컬리지 이후에 우리가 생각하는 ‘대학’ 개념의 교육 과정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10학년 말에 치루는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야 좋은 컬리지로 입학해 그 다음 과정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해 그 소녀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이 국가적 시험 뿐만 아니라 각 학교에서도 내신 성적을 산출하는 시험을 치루고 있었습니다. 오전에는 시험을 치루고 오후에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날 우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위해 쉬운 시험을 이날 배치하고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마음껏 풀 수 있도록 오후 시간을 우리와 함께 활동할 수 있는 시간으로 베려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날 오전 남은 벽화 그리기를 모두 마무리 하고 학교에서 해주는 네팔 학교 급식을 먹었습니다. 닭고기 커리가 들어간 네팔 주식 달밧이었습니다. 콩으로 만든 스프가 얹어진 쌀밥에 카레를 함께 먹는 요리였습니다. 냄새도 맛도 너무나 맛이 있었습니다. 한 그릇을 다 비우고 조금만 더 달라고 간 우리 팀원들에게 네팔 선생님들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또 다시 한 가득 밥과 고기를 얹어주었습니다. 놀라는 우리를 보면서 장난치듯 웃기도 하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기도 했습니다. 오랜만에 즐기는 급식이 네팔 학교라니, 너무나 색다른 경험이었고 즐거웠습니다. 열심히 준비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먼저는 공연팀의 워쉽댄스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K-pop 댄스로 축제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버블아트, 종이접기, 풍선아트, 봉숭아 물들이기, 판박이 체험 부스를 운영해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전교생에게 물총을 지급하고 간이 수영장을 설치해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모든 활동이 끝나고, 스리스티스쿨 아이들에게 우리가 준비한 물품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스리스티스쿨에 있는 아이들 중 40% 이상이 보육 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에게 특별히 학용품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좋은 제품을 한국에서부터 네팔까지 가지고 왔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기쁨과 격려를 전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에게는 작은 선물이지만, 현지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물품으로 쓰이게 될 것입니다. 우리 팀원들은 모두 기쁜 마음으로 구제 물품을 아이들에게 나누었습니다. 선생님들은 특별히 에코백을 갖고싶어했습니다. 혹시라도 남는 것이 있다면 받고 싶다는 것처럼 장난스레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욱 필요한 아이들에게 주기 위해서 선생님들께는 양해를 구해야 했습니다. 비록 선생님들 것까지 넉넉히 챙겨드리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준비한 활동에 아이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선생님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커다란 보람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이날 김주은(04) 청년은, “학교사역을 하고 함께 점심식사를 하는 동안에 눈물을 흘렸는데, 슬퍼서 힘들어서 운 것이 아니고 이 상황이 너무나 행복하고 감사해서 눈물이 났다.”고 소감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사진 김찬혁]

























































# 갑작스런 방문

이날 100개의 구제 물품을 준비해서 93명의 아이에게 물품을 잘 전달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하던 중에, ‘이수어리’라는 이름을 가진 한 선생님이 보육 시설에 6명의 아이를 보살피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또한 카트만두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가난한 곳 아이들을 돌봐주는 유치원도 운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곳 아이들에게도 학용품이 절실히 필요할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팀은 이날 남은 구제물품 7개와 우리가 준비한 추가 구제물품 23개를 더해서 총 30개를 직접 이수어리 선생님의 집이자 보육 시설을 방문해 전달해 주기로 했습니다. 갑작스럽게 생겨난 구제 물품 전달이지만, 우리는 더 많은 아이에게 물품을 전달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수어리 선생님과 신앙과 삶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이수어리 선생님의 남편분은 네팔 현지 목사님이었습니다. 부모님을 잃고 가난한 아이들을 데려와 보육 시설에서 잘 양육시키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식재료와 시설 운영비는 아는 지인을 통해서 후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네팔에서의 삶이 참으로 쉽지 않다는 것을 네팔의 청년들과 대화를 나누며 절실히 느끼고 있던 우리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이렇게 아이들을 돌보고 보살피며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네팔에서 믿음을 지키며 삶으로 복음을 전하는 이 사람들을 보며 우리 또한 무엇인가 변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의 계획으로 되는 것은 없는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놀라운 사랑으로 채워주십니다.” 이수어리 선생님의 남편 목사님이 우리에게 감사를 표하고 또 표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뿌듯하고 기쁜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사랑, 교회의 사랑을 흘려보내고 왔습니다.

이정한(01) 청년은 “학교에서 선생님들까지도 함께 즐겁게 행복하게 참여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했다. 오늘 일정이 쉽지 않다고 느꼈는데, 막상 사역을 하니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다. 하나님께 맡기고 최선을 다하면 잘 되겠지 하는 믿음이 생긴다. 내일 하루도 주님을 의지하며 나아가고자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류가은(00) 청년은, “서로가 힘들까봐 서로의 안부를 묻고 짐을 하나라도 더 옮기려고 먼저 팔을 걷어붙이는 모습에, ‘천국의 모습이 이렇겠구나.’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며 감사와 행복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태헌(98) 청년은, “우리에게 와서 기도해주겠다고 손을 붙잡는 아이들을 보면서, 하나님이 정말 이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구나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은 네팔에서 크신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게 해주십니다. 간절히 소망하는 것은 우리 팀원들이 한국에 돌아갔을 때, 그 특별한 은혜를 그저 그리운 추억 속 빛바랜 사진으로 기억하지 않는 것입니다. 네팔의 사역이 끝나도 5년 10년 20년. 시간이 흘러 네팔에서의 경험을 성숙한 행복의 첫 지점으로 추억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날 우리는 “네팔에서의 행복이 지금까지 여전하네”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원문: 서울광염교회 광염게시판 (2023.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