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초록빛이 무성한 여름,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청년 54교구 구제팀 “이제”는 6.25 참전 유공자 어르신들을 방문하였습니다. 방문하기에 앞서 6.25 참전 유공자회 중 노원구지회에서 근무하고 있는 강미경 권사님의 도움을 받아, 방문 일정을 전달하려 전화드린 어르신께 청년들과 식사한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대하고 계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 말씀에 청년들도 덩달아 설렘과 기대를 가지고 구제를 준비하였습니다.
8명의 청년이 2명이 한 조가 되어 총 네 어르신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생필품을 구매하는 청년들 [사진 류정현]


첫번째 가정은 이말술 어르신의 댁이였습니다. 여름을 나기 위한 여름용 이불, 의류, 생필용품 등을 구매하였습니다. 어르신의 거동이 불편하여 죽과 함께 방문하여 어르신 댁에서 함께 식사하였습니다.

[사진 이헌택]

나머지 세 가정은 어르신들을 모시고 다 같이 모여 식사하였습니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고, 6.25 참전에 대한 에피소드들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새삼 지금의 평안하고 풍족한 삶이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10만큼을 누리기 위해선 10만큼의 다른 이의 헌신이 있었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누군가가 흘려 보낸 것들을 받은 삶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식사 교제 후 가정별로 흩어져 어르신들이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였습니다.

[사진 김남주]
두번째 가정은 이득수 어르신 댁이였습니다. 혼자 사시는 어르신을 위해 가전제품을 구매하였습니다.


[사진 백은주]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나실 수 있게 선풍기를 설치해 드렸습니다. 좋아하시는 어르신을 보며 성도님들의 사랑을 전하는 통로가 될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사진 최수안]
세번째 가정은 구병조 어르신댁이였습니다. 필요하신 물품과 반찬거리들을 구매하여 냉장고를 채워드렸습니다. 냉장고가 채워지는 만큼 어르신의 마음도, 청년들의 마음도 풍성하게 채워지는 듯했습니다.


[사진 변진우]
마지막 가정은 이성근 어르신댁이였습니다. 쌀과 고기 등 식료품과 생필품을 위주로 장을 보았습니다. “오래 살다 보니 이런 일도 다 있네. 너무 좋아서 꿈일까봐 겁나” 어르신이 제 손을 꼭 잡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사진 황준]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에스겔 47:9]
이 땅에서 숨쉬는 일 조차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많은 사람의 열심과 희생으로, 또 교회에서 청년으로써 많은 것을 받고 많이 채움 받았습니다. 받은 사랑과 은혜가 고이지 않도록 흘려보내고자 하는 소망에 응답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게 하셔서 교회 이름으로 아름답게 흘려 보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를 통해 흘러간 사랑과 복음 가운데 생명이 살아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가정을 위해 기도해 드리고 다음에 또 들리겠다는 말씀을 드리며 집을 나섰습니다. 3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모든 순간이 감사했고 어르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립보서 2:13]
늘 모든 구제가 그랬듯 이번 구제도 54교구 청년 구제팀 ‘이제’만의 의지나 열정이 아니었습니다. 각 사람에게 보내신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사랑과 힘과 상황을 허락해주셨습니다. 4가정으로 찢어져서 교제하고 장을 보았지만 모든 청년의 마음은 같았습니다. 헌신하고자 각자의 시간을 내어 결단한 구제에서 오히려 사랑의 통로가 되어 우리를 향하신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함께 구제팀에 참여한 변진우 청년의 소감입니다.
그 날은 구제의 날이었습니다. 더 정확히는, 일종의 전환점이었습니다. 겉보기로는 단순한 봉사활동일지라 하더라도 실로는 제 내면을 해체하는 지점이었습니다. 먼저,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우리교회 뿐 아니라 어느 교회든 항상 강조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사랑을 그 중 하나로 들 수 있습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이 말은 믿는분들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분들도 널리 아는 가치입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는가? 누가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상당수의 분들이 그렇다고 답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여기서의 “이웃”은 자신의 주변인에만 국한됩니다. 하지만, 이 “이웃”이라는 말에는 내 주변인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이들이 포함됩니다.
마태복음 5장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무난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이 구절을 기반으로 삼아 제 내면과 외면을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활동을 하면서 저 자신에게서 여러가지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바리새인적 모습이었습니다. 일단 그 전에 먼저, 여러 의문점을 제 자신에게 가졌는데 그 의문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의 사랑의 대상이 진실되게 보편적 대상에 적용이 되는지, 성경의 말씀을 단순히 아는 것에서 나아가 실천으로 가는 단계에 있는지, 예수님께서 강하게 비판하셨던 바리새인들의 모습이 저에게서 구현되지는 않는지 등 여러 강한 의문이었습니다. 이 중 저에게 가장 강하게 다가왔던 생각은 율법을 강조는 하되 정작 본인들은 지키지 않았던 바리새인이 저에게도 관찰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바리새인의 모습과 멀어지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욱 고민해가며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것에는 청지기 정신 또한 있습니다. 여기서의 청지기 정신은 비단 물질의 나눔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의 나눔 또한 필요합니다. “나눔”이라 하면 일반적으로는 나눔의 물질적 부분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주님께서 중요시하는 것은 계량적 기준으로 측정되는 크기가 아닙니다. 진실로 중요시하시는 것은 행하는 자의 마음의 진정성과 그 크기입니다. 이를 아는 것과는 반대로, 제가 학생이라는 현재 신분을 면죄부로 삼아 현재는 노동소득이나 자본소득이 없다는 이유로 나눔을 기피해오는 경향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저 또한 이를 지식적으로만 알고, 물질주의에 잠식된 세상의 성향에 잠식되어 계량적 기준에 집중하는 등 그 진정성을 잃었던 것입니다. 이를 탈피하기 위해, 추후에는 어떠한 고민을 가지고 어떠한 시간을 보내야 할 지를 더욱 성찰해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구제를 위해 성도분들이 드린 십일조에서 142만 7290원을 사용하였습니다. 이 일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