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편지에서
사도는 말합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헬라인이나
야만인 지혜자 어리석은 자는
한번도 바울에게 빚지운 적이 없습니다
쉽게 말해 그들이 뭘 해주거나
바울을 위해 내어준 어떤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말합니다
내 안에는 그들에게 좋은 것을
(이 좋은 것은 ‘복음’입니다) 전해야 한다는
빚진 마음을 가지고 있다.
더 와닿게 표현하면
나는 늘 부담을 가지고 있다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자유 안에 거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이 자유는,
허공에 놓인 자유
아무것도 안 할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합니다.
그(하나님)가 원하시는 대로
살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합니다.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종으로 자리가 바뀐 자유를 의미합니다.
복음 안에 최고의 자유를 만끽한 바울은
역설적이게도
늘 부담을 가졌습니다.
왜입니까?
진짜 구원을 누린 자는
그 구원을 온 만방에 전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뜨거운 마음을 공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가
그저 나에게만 임하게 둘 수 없다는
역설적인 자기 인식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중인데,
지적으로 충만해지는데
내 안에 아무 부담이 없다면
이것은 신앙이 아니라
신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예수를 믿으면
역설적이게도 부담이 올라옵니다.
그 부담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누릴 자격 없는 나에게 주어진
놀라운 이 구원의 권세가,
결코 나에게만 있어서는 안된다는 그 열망.
구령의 갈망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자유한 자 바울은
놀랍게도 늘 빚진 자로 살았습니다.
그 빚진 마음으로
꺼지지 않는 열정을 드러내며 산 사람입니다.
살면서
분명한 이 역설을 늘 기억하십시오.
예수 안에 누리는 이 자유와
빚진 마음은
모순된 단어가 아니라,
동일 선상에 있는 단어라는 사실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