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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

작성자: 이헌택목사

    믿음 없음을
    조금 달리 표현하면
    해석과정을 거치지 않은 상태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어떠한 사건과 사물을 바라보며
    인간적으로 느끼는 감정을
    우리는 그대로 토로하곤 합니다.

    망했다.
    다 끝났다.

    이 말 속에는
    인간적인 자원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는 절망감과
    앞으로 나아갈수 없는 상태를 담은
    그 아픔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 일하실 하나님을
    넣은 적 없는 해석의 말인 것이지요.

    또 일상에서 우리는
    종종 이런 실수를 봅니다.

    눈 앞에 세워진 사람을 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판단합니다.

    저따위로 살아서 되겠어?
    어떻게 저 자리에 올라갔지

    그러나 로마서는 말합니다.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13장 1절)

    눈 앞에 드러난 권위자나 권위가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존재(하나님)의 승인, 허락 없이
    세워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세우려고 한 사람이
    세워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것이 악한 리더든
    선한 리더든
    하나님의 승인 하에 권세 하에 세워진 것입니다.

    성경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13장 1절)

    보여지는 것은
    말 그대로
    보이는 어떤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보이는 것 그대로 보고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일 뒤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분명하게 계심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의 과거를 떠올려봅니다.

    잘 나가는 사람을 부러워 했습니다.
    나보다 나은 권위에 있는 사람을
    깎아 내렸습니다.

    드러난 내 현실적 고난을
    저주하며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어리석은 열매를 맺는 자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 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믿음 없음은
    멀리 갈 것 없이

    그 어떤 해석 과정 없이
    내 안에 맺히는 말을 토로하는 것이며,

    그 어떤 정제의 과정 없이
    센 말을 내 뱉는 것이라는 것을,

    정탐꾼 열명의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패닉 상태에 빠져서,
    차라리 이집트에서 죽는게 나았겠다.
    말하는 그 말에(사실은 정말로 살고 싶어 한 그 말에)
    하나님은 격분하였습니다.

    왜 입니까?
    거기에는 믿음 없음의 상태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 그대로를 보고
    판단하지 마십시오.

    믿음이라는 해석 과정을 거치십시오.

    날것 자체로 판단하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 뒤에 있는 보이지 않는 능력과
    권세를 인정하십시오

    그때 제대로 말하게 되고
    그때 제대로 행동하게 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