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제자들이 세례를 주자,
바리새인들은 팔짱을 끼고 그들을 봤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아졌습니다.
많은 이가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당시 아무런 연고도 학벌도 없는
청년 예수의 사역은 지도자들에게 많은 논란거리가 됐습니다.
‘혹시나 내 자리를 가져가지는 않을까’,
‘너무 과도한 혁명이 되지는 않을까’
염려가 마음에 가득해질 그때,
우리 주님이 택하신 길은
사람 많은 유대를 지나
북쪽 갈릴리로,
이방 접경 지대로
다시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땅에는 여전히 낮고 비천한 영혼들이 있었고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주님에게 사람의 시선이란
사람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에게 인기란
십자가를 지는 일보다 우선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갈릴리로 가던 중 들르신 곳이 있습니다.
“사마리아로 가겠다”(요한복음 4장)
사마리아에서 주님이 하신 일은
하나였습니다.
목마른 여인에게
생명의 우물을 소개해주는 일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한 여인,
유대인들에게 멸시받았던 한 여인은
그리스도와의 대화 속에서 놀라운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메시야인 주님을 전하기 위해
기쁨으로 달려갔습니다.
온 마을에 외쳤습니다.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
“구원자를 만났다”
“기름 부음 받은 왕을 만났다”
그녀는 그렇게 회복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은 그 순간에도
살려야 할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깨어 있는 삶은
사명의 자리를 지키는 삶입니다.
그리고 영혼을 살리는 삶입니다.
사명자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납니다.
왜입니까?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또 살리러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십자가를 지는 삶은
세상이 말하는 영광의 길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모든 이가 주목하는 길이 아닐 수 있습니다.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을 움직이는
통제자의 길도 아닐 수 있습니다.
그 길은
그저 누군가를 살리는 길,
영혼을 세우는 자리로
또다시 나아가는 길입니다.
사람들이 보기 좋은 자리,
성도가 가야 하는 자리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 두 자리 중에,
그 두 길 중에
무엇을 택해야 할지 우리는 결정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디로 달려가고 있나요?
사랑하는 여러분과
우리 54교구가 오직 주를 따르기를 원합니다.
그 자리 지키기를 원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