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믿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단순히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데서 그치는 자들이 아닙니다.
세상과 구별되는 다른 지점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를 믿은 이후에
아무것도 아닌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크다며
그 분 안에서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고, 그분의 부르심에 따라 살기로 결단합니다.
그래서 그는 육신의 어려움, 쇠약함, 배고픔에도
하나님을 모른채 살아가는 자들에게 예수를 전합니다.
자신 안에서 소망을 발견하려 하다가 낙망하고 지쳐버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진리가 어디에 놓여 있는지 알립니다.
그런데 특별한 것은
이 진리를 전하는 바울의 모습이, 당시의 지혜 있는 선생들과는 달랐다는 것입니다.
헬라 철학자들, 소위 스스로가 지혜 있다고 말하는 지헤자들은
자신이 가진 지식으로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말을 하려 했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말들, 인기를 올릴 수 있는 말들을 하며 자신을 꾸준히 초청해주기를 바랬습니다.
또 그러한 강연에 대한 사례를 충분히 받으며, 그들의 생활을 유지하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진리, 복음을 붙든 사도 바울은 사람을 만족시키는 말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말씀을 그들에게 선포합니다.
이방인들에게
그들이 하나님 앞에 분명히 죄인인 것과, 죄인들에게 다가오신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라고 말합니다.
또 그의 삶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어떠한 폐도 끼치지 않기 위한 수고로 가득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2장 9절입니다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여기서 일하였다는 말은.
실제로 그가 생업에 종사하였다는 말입니다.
그에게는 천막을 짓는 기술이 있었고
그는 낮에는 지속적으로 그 천막을 짓는 기술을 통해
돈을 벌며, 스스로 자비량 선교사가 되어 일하였습니다.
바울은 복음 전도자로서, 분명히 사례를 받을 권리가 있었지만
이방인이 대다수인 그리스의 데살로니가 지역에
그의 희생과 수고를 통해 복음이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되기를 소망하였습니다.
그 결과
한달 남짓 가량 밖에 머물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성도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데살로니가 1장 7절에서 나오듯
그들의 믿음의 소문이 마게도니아 전역에 퍼지는 열매로까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 안에 거하는 자들은
세상의 지식인들과는 다른 자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권위를 주장하지 않고
스스로 희생하는 길로 나아가
데살로니가 지역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한 바울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가진
거룩하고 위대한 지식이
자신을 높이는데 사용된 것이 아니라
자기의 몸을 불사르듯 희생하는 쪽으로 쓰여진 것은,
지금 복음을 붙들고 있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를 분명히 알려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의 인생에
우리의 참 사도인 바울의 인생을 닮아 가시는 일이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