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들의 결혼관에 대해 비판하시고
다른 여자를 만나기 위해 이혼하는 일에 대해
강하게 금지하신 것을 통해
우리 인생에서의 적용점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성과 결혼에 있어서
우리 시대의 키워드는
동거와 비혼과 같은 개념의 대중화입니다
이 시대의 청년들이
동거를 선호하고
결혼을 거부하는 이유가 몇가지 있지만
그 중에서 대표적인 이유를 꼽으라면
성관계를 통해 쾌락은 누리되
책임은 지지 않는 관계로 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혹시나 변할지 모르는 감정에 대한
보험을 들어 놓는 부분이 없지 않은 것이죠
상대방을 향한 마음과 감정이 변했을때
결혼이 불행해질까 염려가 있는 동시에
우리 모두에게 있는 성욕은, 해소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연애 안에서
이 욕구를 마음껏 푸는 것에 대해
별 문제가 되지 않는 일로 여기기도 합니다
나의 여자친구를
나의 남자친구를
뜨겁게 사랑하기에
몸도 마음도 다 합치고 싶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어떤 행위도 다 로맨틱 하고
멋진 것이라고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요청하시는 것은
단순히
“성관계 아무나 하지마라”
“사랑하는 사람과 해라” 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성욕이라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약속과 책임이라는 어떤 관계 안에 있어야 한다. 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결혼을 했지만
감정이 떨어졌을때
다른 여인을 만나기 위해
이혼증서를 쓴 이후 다른 여인들을 취했는데
이들은
상대를 향한 감정이 고갈되면
형식적인 결혼이라는
약속을 파기하고
또 만나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모습은
현대인의 연애 감정과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사랑이란
약속이 아닌 ‘감정’이며
Sex 하고 싶은 감정
상대방을 향해
설레이는 그 로맨틱한 감정이
곧 인생이 추구해야 할 궁극의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과 현대인들에게
예수님이 요청하시는 것은
누군가와의 로맨틱한 감정만이
곧 사랑이 아니라.
약속이라는 관계
결혼이라는 관계 안에서 지켜지고
보충되는 감정
즉
로맨틱한 감정을 넘어선
‘약속이라는 관계 안에서 서로가 충실하게 나아가는 것’
그것이 곧 사랑이라고 말하고 계십니다.
남녀가 부모를 떠나 연합하여
한몸을 이루는 것
이것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진 약속이기에
파기할수 없다며
창세기 2:24의
말씀까지 인용하십니다
70이 다되어서도
팔짱을 끼고 해변가를 걷는
노부부를 보며
우리가 감동을 얻는 것은
그들 안에
서로를 향한 정욕이
불타오르기에 그런 것이 아니라.
수많은 세월 가운데
낙망과 기쁨과 가운데서도
꺠어지지 않은 약속,
지켜진 그 약속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와도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약속안에 있기에(신약, 구약)
우리는 안전한 것이지
우리의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을 향한 감정의 변화를 생각할때
우리는 안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 안에
우리는 구원 얻은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Sex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정에 따른 사랑,
연애 안에서의 섹스(약속이 없는 사랑)는
궁극적으로
끝까지 함께 한다는 보장이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이며
나의 감정을 따른
나의 정욕에 치우친
사랑 표현이므로
하나님의 질서인
약속(결혼)으로 보충되어지지 않는다면
난잡한 관계로 나아갈 여지만 생기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연애관계는
결혼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미약한 약속이며
언제든지 우리 깨졌다라고 선포하면
끝나는 약속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크리스천들은
결혼 전에 성적인 관계를
가지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약속 안으로
그 성적 연합을 집어 넣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잘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상처 받지 않고
다른 이들 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아름다운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평안하기를 바라시는 겁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