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electronic ed., 행 27:20–22).
목회를 하면서 느끼는 사실은
결국 목사란 소망을 전하는 존재라는 점입니다.
예리한 분석력과 날카로운 설교
많은 것들이 목사에게 필요한 것이겠지만
결국 그 분석도 그 날카로운 설교도
하나님의 백성들, 청중들에게 소망을 주지 못한다면
그저 빛바랜 검에 불과한 것입니다.
모든 이들이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알려준 이후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소망이 있음을
알려줘야 합니다.
죽음을 이기고 일어나신 예수와 같이
우리도 결코 이 절망이 끝이 아님을,
결코 이 죽음같은 고통이 우리를 진짜 끝내는 것이 아님을
나의 죄인됨이 나의 마지막 모습이 아님을
알려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결국 우리의 마지막은 죽음이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맞춰 인생을 살아갑니다.
부정적인 말과,
세상에 대한 원망,
어차피 죽을 인생 여기서 맘껏 살자 라는
세상 사람들의 생각 안에는,
결국 여기가 마지막이라는 그런 비관적인 전제가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큐티 본문에서
하나님은 당신이 언제 일하시는지
정확하게 일러주고 계십니다.
20절은 말합니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며칠을 배타고 고생한 이후
모두 구원의 여망조차 없어졌다
라고, 20절은 말합니다.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배에탄 사람들에게 바울은
21절 22절에서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하나님은 모두가 끝을 말할때
일하기 시작하시는 분입니다.
내 힘으로 설 수 없다고 판단이 될때
오히려 거기서 시작하시는 분입니다.
늘 인생을 살다보니
진짜 내가 두손 들고 항복하며
내 힘으로 못하겠다 라고 생각하며
주님 앞에 엎드릴때,
그 때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일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오늘 바울은
모두 구원의 여망이 없어졌음에
절망하고 있을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모든 여망이 사라졌을때 일하시는 주님
이런 타이밍에 등장하시는 그분의 의도는 ,아마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내가 못하겠으니
주님 도와주세요 라는
그 말을 기다리시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의 오늘이
절망스런 오늘이
희망과 소망의 시작점이 되는
힘찬 날이 되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