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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해야 할 것,

작성자: 이헌택목사


    주중에 뉴스를 보는데 뭔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사회적으로 백신접종이 잘 이루어지던 분위기이고 여러 정황상 예배 인원 허용 수치도 높아질 것이 예측되는 주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쏟아지는 확진사 수와 여러 상황 속에서, 다음주 월요일부터 새로운 거리두기 제한이 이루어진다는 소식을 우리는 모두 듣게되었습니다. 

    코로나의 특징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예측불가능성입니다. 예측하기 힘듭니다. 그리고 통제하였다고 자신할때, 코로나는 마치 우리를 비웃듯 연약한 방역체계를 붙들고 뒤흔듭니다. 통제 불가능한 것을 완전히 손에 붙들고 통제해보려 할때, 우리는 무력감을 느낍니다. 어려움을 느낍니다. 좌절을 느끼기도 합니다. ‘정상’이라는 상태를 꾸준히 갈망하는 우리의 마음은 이미 롤러코스터를 몇번은 탔습니다. 

    예레미야가 말씀을 선포할 당시의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대인 고관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모든 부분이 타락해있는 악화 일변도의 현실 속에서, 그들의 암울한 미래를 허무한 말과 늘 듣던 평안에 관한 주문들로 통제해보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무엇인가를  늘 말해왔던 선지자들은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고 말하며, 진지해야만 하는 상황을 가벼운 것으로 만들어냈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그들의 미래는 점점 어두워져만 갔습니다. 통제 불가능한 그들의 미래를, 공허한 말들로 통제해보려 할 수록 상황은 쉽지 않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이 통제해야 했던 것은, 그들의 마음과 그들의 삶과,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에 대한 태도였습니다. 그들은 주어지는 이득에 따라서 날뛰는 그들의 마음을 다잡아야만 했습니다. 그들의 삶을 하나님 앞에 두고 잠잠케 하며 조용히 주를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아침마다 새롭게 하시는 그 은혜 붙잡으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진짜 선지자의 말들을 붙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종이 한장 만큼이나 천박하고 얇은 존재였던 그들은 통제해야 했던 그들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통제해보려고 힘썼습니다. 

    좋지 못한 나무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들은 썩은 열매만을 맺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편에 서서 주님의 뜻이 자신을 통해 이뤄지기를 꿈꾸기 보다는, 자기 편이 되어주실 것이라고 하나님 앞에 공허한 주문을 외쳤습니다. 말씀에 대한 고민은 없었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그들에게 하나님은 점점 더 예측 불가능한 존재로 나타날 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것이 심난한 시기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집중해야하는 것. 통제 가능한 우리의 삶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 삶을 돌이킵시다. 통제 불가능한 코로나를 바라보며 가슴 치지 말고, 주를 기쁘시게 하기를 갈망하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보여드립시다. 

    지금은 잠잠해야 할 때입니다.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우리를 쥐고 흔들때, 우리는 통제 가능한 그곳, 우리의 중심을 주께 드리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도 모르는 사이, 이 통제 불가능해 보이는 코로나는 잠잠해질 것입니다. 물론 이후의 우리의 삶은 많이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때가 지나고, 우리는 고백할 것입니다. 이 또한 주의 손에 붙들려 있는 현실이었음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