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주님은
마태복음에서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는 말씀 하나를 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입니다(마태복음 6:3).
누군가를 위해
선행을 하거나 구제하는 일은
참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기억하게 하는 일이 될 때
우리는 한 가지 분명한 죄를 짓게 됩니다.
무엇입니까?
내가 신이 되는 죄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고 섬깁니다.
최선의 노력으로 구제를 합니다.
외견상
그것은 남을 위해 한 일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칭송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일은
철저히 나를 위해 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언제입니까?
그 일의 목적이
나를 드러내고
내가 영광스럽게 되는 것에 있다면,
남을 위해 한 그 일,
결국 나를 위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의 자리를
인생들이 탐한 것입니다.
선악의 기준을
스스로가 정합니다.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을
인생들이 가지려 합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모든 죄악의 뿌리는 탄생했습니다.
보이는 선행과
특별한 열심으로 유명해진 이들이
한 순간에 어려워지는 걸 봅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끝까지
스스로를 잊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자기를 사수하고
내 영광을 위한 목적으로
모든 일을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핵심은
그래서 잊는 데 있습니다.
낮추는 것은
인위적입니다.
하지만
자기를 잊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낮아지는 길로 갑니다.
하나님이 좋아서
달려가는 사람은
분냄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왜입니까?
내가 좋아서 한 일이지
보상받고 싶어서 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를 포함한 대부분 안에 있는
불만 속에는
실제로
위에서 언급한 보상심리가 연관 되어 있습니다.
불타는 열심과
놀라운 능력으로 나아간 사랑의 현장에서
결국 나를 잊지 못한 자들.
거기에 담긴 보상심리.
그 안에는 결코 낮추지 못하는
죄악된 우리 영혼이 있습니다.
주님 앞에서
나를 잊은 채 사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 영광에 붙들려
그 은혜에 붙들리는 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은혜에 붙들려
그렇게 나를 잊은 채 달려가다 보면
우리 주님 여러분에게 말씀하실 겁니다.
“잘하였도다 충성된 종아,
네가 나를 위해 선한 일을 행하였도다”
그 날
그 순간을 위해
여전히 달려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
마태복음에서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는 말씀 하나를 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입니다(마태복음 6:3).
누군가를 위해
선행을 하거나 구제하는 일은
참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기억하게 하는 일이 될 때
우리는 한 가지 분명한 죄를 짓게 됩니다.
무엇입니까?
내가 신이 되는 죄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고 섬깁니다.
최선의 노력으로 구제를 합니다.
외견상
그것은 남을 위해 한 일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칭송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일은
철저히 나를 위해 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언제입니까?
그 일의 목적이
나를 드러내고
내가 영광스럽게 되는 것에 있다면,
남을 위해 한 그 일,
결국 나를 위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의 자리를
인생들이 탐한 것입니다.
선악의 기준을
스스로가 정합니다.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을
인생들이 가지려 합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모든 죄악의 뿌리는 탄생했습니다.
보이는 선행과
특별한 열심으로 유명해진 이들이
한 순간에 어려워지는 걸 봅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끝까지
스스로를 잊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자기를 사수하고
내 영광을 위한 목적으로
모든 일을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핵심은
그래서 잊는 데 있습니다.
낮추는 것은
인위적입니다.
하지만
자기를 잊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낮아지는 길로 갑니다.
하나님이 좋아서
달려가는 사람은
분냄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왜입니까?
내가 좋아서 한 일이지
보상받고 싶어서 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를 포함한 대부분 안에 있는
불만 속에는
실제로
위에서 언급한 보상심리가 연관 되어 있습니다.
불타는 열심과
놀라운 능력으로 나아간 사랑의 현장에서
결국 나를 잊지 못한 자들.
거기에 담긴 보상심리.
그 안에는 결코 낮추지 못하는
죄악된 우리 영혼이 있습니다.
주님 앞에서
나를 잊은 채 사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 영광에 붙들려
그 은혜에 붙들리는 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은혜에 붙들려
그렇게 나를 잊은 채 달려가다 보면
우리 주님 여러분에게 말씀하실 겁니다.
“잘하였도다 충성된 종아,
네가 나를 위해 선한 일을 행하였도다”
그 날
그 순간을 위해
여전히 달려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