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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 그리고 권위주의

작성자: 이헌택목사

    세상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사용하는
    흔한 용례 가운데 하나가
    “권위적이다”라는 말입니다.

     

    ‘권위적인 사람’이라고 하면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좋지 않은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자기가 가진 것으로
    누군가를 누르려 하고,
    누군가의 양심과 자유를
    억압하는 모습 말입니다.

     

    온갖 어려운 이미지가
    함께 떠오르지요.

     

    그러다 보니
    권위와 자유는 상반되는 단어처럼 느껴지고,
    권위와 기쁨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볼수록,
    일상을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한 가지 중요한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권위와 기쁨’,
    ‘권위와 자유’는
    함께 가는 키워드라는 사실입니다.

     

    ‘권위적이다’라는 말이
    자기가 가진 권위를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한다는 의미라면
    부정적인 평가가 맞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지어진 모든 질서와 사회 체계,
    하다못해 복음의 영역에까지
    하나님이 창조하신 좋은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질서입니다.

     

    그리고 권위는
    이 질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한 회사의 사장을 떠올려 보십시오.
    세워진 리더십의 목표를 따라
    회사의 모든 역량은
    한 방향으로 집중되어야 합니다.

     

    ‘혁신’을 목표로 세운 사장 앞에서
    이전의 방식을 고수하고 싶어 하거나
    ‘안정’만을 꿈꾸는 사원이 있다면,
    그 길이 오래가기 어려울 것입니다.

     

    개인이 아니라
    ‘회사’라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가는 길에
    자기만의 목표를
    합리화할 여지는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록 세상적인 예이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이것입니다.

     

    모든 사회 구조에는
    질서가 있고,
    부여된 권위가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의 명령에는
    부모를 무겁게 여기라는 의미와 함께,
    가정 안에도 분명한 권위가 존재함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서는 어떻겠습니까?
    학교 안에서는 어떻겠습니까?

     

    직감적으로 우리는
    질서와 권위가
    모든 사회 구조의
    필수적인 요소임을 알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권위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권위가 나쁘게 보였다면,
    그것은 권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 권위를 잘못 사용한
    사람의 죄악이 문제인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올바른 권위 안에 들어가는 삶은
    사람을 나쁘게 만들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
    저를 가장 어렵게 했던 고통의 상당 부분은
    부모님의 권위와 말씀을 거역하고
    내 뜻대로 살고자 했던
    저 자신의 실수와 오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단언컨대,

    여러분 곁에
    조언해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복입니다.

     

    “참견하는 어머니만 없으면
    내가 얼마나 잘할 수 있을까,
    얼마나 자유로울까”라고 말하던 사람은
    그 시절이 지나고 나서야
    빠르게 깨닫게 됩니다.

     

    잔소리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것이 그동안의 나를
    살려 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권위적인 것이 싫다는 이유로
    권위 자체와 질서를
    부정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린 시절
    완전한 자유를 꿈꾸던 헌택이의
    가장 큰 패착은,

    모든 질서와 권위를 부정하고
    벗어나는 것만이
    나를 살리는 길이라 착각했던 곳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54교구가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질서 안에
    특별한 뜻이 있음을 기억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