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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오래간다

작성자: 이헌택목사

    많은 직장인들이
    손에 꼽는 어려운 자리로
    직장 상사와의 식사 자리를 꼽습니다.

     

    식사할 때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평가받는 자리이고,
    내 어떠함을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
    눈치를 보아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불편한 상사와의 자리를
    피한 많은 이들이
    퇴근길에 자연스레 전화기를 들어 연락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친구입니다.

    “야, 오늘 진짜 힘들었잖아.
    무슨 말 하는지 하나도 이해를 못 하겠더라고.”

     

    지하철의 잠시 스치는 통화인데
    친구와의 이야기는
    어찌 그렇게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많은 이들이
    기독교의 교리를

    위에서 전적으로 은혜를 베푸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는 것,

     

    그저 어떤 동정을 베푸신
    하나님을 붙드는 것으로만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는 기독교의 핵심이
    바로 이 ‘친구’라는 키워드에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요한복음 15:13–15)

     

    평가받는 종,
    어떻게 일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지위와 입지가 위협받는 종이 아니라,

     

    주님은 우리에게
    중요한 키워드 하나를 주셨습니다.

     

    ‘친구’

     

    친구는
    이미 받아들여진 사람입니다.
    일을 못 해도 쫓겨나는 종과는 다릅니다.

    친구의 권세는
    밤늦게 걸려 온 전화를
    기꺼이 받게 하는 힘을 가집니다.

     

    친구는
    설명받습니다.

    막무가내로 순종만 강요받지 않습니다.

     

    친구는
    언제 찾아가도
    여전히 친구이기에 다시 맞아 줍니다.

     

    청년부 사역을 해 보니
    우리 청년들은
    좋은 어른, 좋은 목회자, 좋은 멘토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삶의 동행자,
    곧 친구를 필요로 합니다.

     

    친구처럼 다가갈 수 있을 때
    회복은 시작됩니다.

     

    선생님은
    일 년에 두 번 연락하지만

    친구는
    생각날 때 연락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종에서 친구로 불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친구 되신 주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너도 가서 친구가 되어 주어라.”

     

    단순한 동정이 아닙니다.

    친구가 되는 길까지
    우리는 스스로를 그들 가운데로,
    낮은 자리로 내려놓는 것입니다.

     

    새해에 주신 아침,
    오늘도 다짐해 봅니다.

     

    마흔 살이지만
    여전히 친구로 다가설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

     

    사랑하는 청년들의 삶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