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를 묵상하다
마음에 들어온 본문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 45:5)
우리가 잘 알듯이
요셉의 삶은
고난 그 자체였습니다.
아버지에게 사랑받는다는 이유로
형제들에게 팔렸습니다.
어디서나
주님을 경외하며 살았지만
이후로도
수없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주인집 아내를
범하려 했다는 오해를 받아
감옥에 들어갔으며,
감옥 속에서
우연히 만난 관원들에게
자신의 삶을 탄원했음에도
2년 동안 아무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 속에서
그는 무엇으로
고난을 이겨냈을까요?
창세기의 한 구절에서
그는 분명하게 말합니다.
내가 겪은 모든 고난,
남이 겪지 않은
그 모든 아픔들.
나를 먼저 사용하시려는
주님의 계획 안에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들이 좌절하는 순간이
언제입니까?
왜 나입니까? 나에게는 왜 이런 시련이 가득한 것입니까?
고백하는 그때입니다.
그런데 오늘 요셉이
하는 말을 보십시오.
그가 유달리 아팠고
먼저 고난받았으며
험한 인생 살았지만
그가 끝내 고백하는
그 고백이 무엇입니까?
그들을 위해,
형들을 위해,
이스라엘을 위해
이루실 하나님의 역사에
먼저 자신이 쓰임 받은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유달리 아프십니까?
나만 먼저 가는
그 고통의 길이 있습니까?
성공이 가득해 보인
그 현장 속에
실패만 가득한
내 삶의 눈물 자국이 있습니까?
주님은
때로 우리를
일부러 그곳에 먼저 보내십니다.
그냥 보내신 것 아니고,
살리려고,
세상을 구원하려고.
저는 지금
여러분의 고통에 목적이 있으니
잘 견디라고
함부로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먼저 당하는,
혼자만 느끼는 것 같은 그 고통 속에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요셉은 분명하게 한 번 더
형들을 향해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창 45:7)
내가 당한 그 고통 안엔
큰 구원,
주님의 생명의 역사가 있습니다.
고통 속에
요셉이 바라본 그것은 바로
그분의 큰 그림입니다.
먼저 당한다고 좌절하지 않으시길,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낙심하지 마시기를.
오히려 그 안에 담긴
주님의 큰 그림,
여러분을 통해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실
그 하나님을 신뢰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