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들(예수님의 사람들)’ 첫 모임을 나누게 되어 기쁩니다!
먼저 ‘예람들’을 잠깐 소개하자면 수련회 때 몇몇 청년들이 모여 하나님과 예수님을 나누고 은혜의 이야기들이 계속되게 하자고 뜻을 같이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예수님 안에 하나 되는 모임으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모임입니다.
첫 모임은 2013년 1월 13일 파리바게뜨 2층 세미나실에서 오후 5시에 가졌고 모임을 여는 주제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습니다. 저, 교리, 바울이, 서린이, 요한이, 용범이, 자연이, 지욱이, 하은이 이렇게 9명이 모였습니다.
아래는 첫 모임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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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질문이 무엇일까요? 어디에 취업할지, 무슨 목표를 세울지, 어떤 사람을 만날지 중요한 질문은 많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어떻게 살까?’의 질문이지요. 그러나 그 질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지요. 자신이 어떤 가치를 중요히 여기는 사람인지 알아야 잘 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질문보다 더욱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계실까? 계신다면 그분은 어떤 분인가? 우리를 향해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시는가?’, 즉 ‘하나님은 누구신가?’의 질문입니다. 예를 들어 강아지가 있는데 그 강아지는 자신이 어떻게 하면 행복할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자신은 뼈다귀가 있고, 안락한 개집이 있으며, 예쁜 옆집 암컷 강아지 복순이와 살면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나름대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의 주인은 그날 그 강아지를 삶아 먹으려는 계획이었다면, 강아지가 생각한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눅 12: 16~21)
우리가 그 강아지와 같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현실의 강아지라면 차라리 운 좋게 주인의 손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며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에서는 누구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또 강아지의 삶이 비참하다 해도 죽을 때까지이지만, 하나님이시라면 죽음으로도 피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지옥)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시 139: 1~18)
이처럼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우리의 삶의 행복도, 의미도, 목적도, 이유도 다 거기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매 순간 발견하고 힘써 알아야 할 분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여기에 생각도 돈도 시간도 노력도 목숨도 모두 다 걸어야 합니다. 이단이나 사이비 등 잘못된 사상에 빠져 재산을 다 팔고 인생을 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잘못된 것을 따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그렇게 전부를 거는 태도 자체는 전혀 비난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고 거기에 따라 사는 것은 그러고도 남는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사람은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미래도 모르고, 사후세계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나름대로 설명하기도 하고 여러 방법을 동원해 추측하지만, 정확한 것은 알 수가 없습니다. 또 한 가지 모르는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내 마음을 다른 사람들이 모르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내가 모릅니다. 표정, 말, 행동, 과거의 사건 등으로 짐작할 수 있지만 100%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20년을 넘게 부부로 산다 하여도 배우자의 마음을 알기는 어려워서 황혼 이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보이는 사람의 마음도 알지 못하는 우리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런데 사람의 마음을 정확하게 아는 길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말해주는 사람이 자기 마음을 거짓이 없고 숨김이 없이 다 말해주는 것이며(이것이 가장 큽니다!), 그것을 듣는 사람도 의심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그 내용과 중요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분이 누구인지 아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그분께서 자신의 전부를 알려 주시고 그것을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첫째를 ‘은혜’, 둘째를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을 밝히 보이셨을까요?
요한복음 15장 15절은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라고 기록합니다. 시제를 보면 ‘알게 하리라’가 아닌 완료형 ‘알게 하였다’입니다. 곧 성경은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예수님을 통해서 빠짐없이 모조리 다 우리에게 이미 알려 주셨음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이 부분은 다음 모임 때에 요한복음 1장을 중심으로 더 자세히 나누고자 하니 꼭 읽어오세요!).
사람들이 나름 생각하는 하나님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마음에 있는 것을 말해 주면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듯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그분의 마음에 있는 것을 알려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남은 것은 오직 이미 알려주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믿음뿐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을 믿는 믿음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롬 5: 8~11)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믿음으로 받은 구원뿐 아니라, 이미 화목하게 된 자로서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와 함께 사시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얻는 매일의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거듭난 사람이라면 이 구원을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빌 2: 12). 그 구원도 처음 의롭다 하심을 받을 때처럼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오직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합 2: 4, 롬 1: 17, 갈 3: 11, 히 10: 38).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단순히 라이프 스타일이 아닙니다. 주인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께 전부를 거는 예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련회 때 이혁 목사님께서 강조하신 것처럼 죄 사함의 구원은 믿음으로 받고 그 이후는 행위로 이루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구원을 이미 마치셨습니다. 고 한경직 목사님께서는 생전에 더욱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되는 것이 소원이라 하셨습니다. ‘예람들’이라는 이름도 요즘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의 뜻이 너무나 흐려져 버려서 그 단어를 피했을 뿐 사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입니다.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더욱 믿으려는 사람들의 자유롭고 자발적인 모임이 되었으면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의 은혜에 녹고 그분의 사랑에 젖어 예수님을 언제나 1등으로 모시는 순전한 그리스도인, 예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하면서 예람들 모임을 시작하게 된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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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람들 모임 처음 몇 번은 성경공부를 중심으로 모든 것의 본질 되시는 예수님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그렇지만 ‘예람들’은 성경공부 모임만은 아니고 이후에는 자유로운 은혜 나눔과 봉사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시면 주저 없이 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