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밤, 아파트에서 나와 적적하게 멀리 도시의 불빛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었다. ‘사는 게 뭐 이럴까.’란 생각에 밖으로 나온 것이어서
그런지, 주변은 더 적막했고 불빛들은 더 서글펐다.
‘저 불빛 하나하나엔, 저마다 이유가 있겠지. 늦게까지 일하고자 켜놓은 사무실의 형광등도 있고, 자기 가게를 알리려는 네온사인도
있겠지. 그렇게,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빛을 보며, 나는 지금 여기에 홀로 있구나.’
나는 그 어느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냐면 그 이유란 곧 사람들의 이유였고, 그들의 인생이자 싫어도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내
인생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저 빛 중 어떤 것도 되고 싶지 않았다. 그중에는 다른 것들보다 큰 것도 있었고 화려한 것도 있었지만,
도토리 키재기였다.
세상에는 돈을 많이 번 사람도 있고, 큰 권력을 쥔 사람, 자기 분야에서 일인자가 되어 유명세를 떨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래서 그게 뭐?’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저런 가짜 빛 말고는 없는 걸까? 아무리 화려하고 밝아도 사람들이 필요할
땐 켜놓다가 그 필요가 다하면 꺼버리는 인공 빛 말고는 없는 걸까? 이 서글픔을 지울 수 있는 진짜 삶은 없을까?
그러다 문득 도시의 불빛에 실망하고 쓰러지듯 풀밭에 주저앉은 나에게, 밤하늘의 별이 보였다. 그 빛은 도시의 불빛과는 다른, 말
그대로 하나하나가 별인 빛이었다. 이 세상, 지구보다도 훨씬 큰 항성들이었다. 이 땅에서 볼 때에는 비록 아롱이며 반짝이는 작은 빛에 불과하여도
그 빛의 실체는 아무도 능히 끌 수 없는 빛이었다. 도시의 빛은 더 밝고 켜져 있는 동안 더 확고했지만, 희미한 듯 부드럽게 비추는 그 은은함에
비할 바 아니었다. 오히려, 지구의 불안정한 대기 때문에 때로 흔들리는 것 같은 그 모습이 별빛을 더 아름답게 했다.
저 빛이야말로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만드시고 운행하시는 놀라운 빛이었다. 일상에 치여 이 낮은 땅의 빛만 바라보느라 저 높은
하늘의 별들을 잠시 잊었었지만, 저들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도시의 건물들과 불빛들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말이다. 그래, 나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었다. 때로는 작고 초라해 보이나 그 실체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별! 이것이 내가 원하는 삶이었다. 성경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를 자주 별에 비유했다. 아브라함의 자손을 가리켜 하늘의 별과 같이 많으리라 하셨으며, 많은 이를 의로 돌아오게 하는 사람은 별과 같이 영원히
빛날 것이라 하셨다. 영원에 잇댄 삶, 세상이 주는 고난을 이기는 삶이란 무엇인지 알려준 그 은빛의 밤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던 것은, 그래서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