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소개 좀 간단히 해주세요.
김: 시작하는 거에요? 하하~ 저는 현재 동국대학교 가정교육과 4학년에 재학 중인 김채영이구요, 아빠랑 엄마랑 여동생(김채선)이랑 강아지….
현: 강아지?
김: 강아지 되게 좋아해요.
도: 강아지 이름이 뭐에요?
김: 채리요. 채영 채선 채리. 우리집 셋째 딸이에요. 하하~
도: 가정교육과면 진로는 교사 쪽으로 나가실 껀가요??
김: 표면적으로는 교사를 하고 싶은데 아직은~ 하나님 뜻을 잘 모르긴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영혼을 돌보고, 특히 선교사님의 자녀 (MK)에 관심이 많거든요. 교직 하다가 MK 교사로 나가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아직 구체적인 건 잘 모르겠어요.
도: 저 MK인데.
김: 진짜요? MK구나~ 부모님이랑 떨어져 살아요? 어느 나라?
현: 인터뷰를 꺼꾸로 당하고 있어~!!
김: 궁금해서요~ 하하~ 이렇게 하면서 대화를 잇는거죠. 언제 한국에 왔어요?
도: 저는 특이한 케이스에요. 20살에 아빠엄마가 선교사로 나가시기로 결정을 하셨어요.
김: 그렇군요~
도: 예수님은 언제 어떻게 만나셨나요?
김: 저는 모태신앙이었고, 중고등학교때 까지는 그냥그냥 교회에 다녔어요. 성격이 ‘해야 한다’라고 하면 하는 스타일이라서 엄마가 교회 열심히 다니라고 하면 열심히 다니고, 수련회도 안가는건 말이 안되는 집안 분위기 때문에 열심히 다니고~ 그러면서 대략적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갔어요. 대학교에서 IVF라는 기독교 동아리에 들면서부터. 내가 누구인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되었어요. 거기서부터 예수님과 인격적인 만남이 시작됐던 것 같아요. 어떤계기가 있었다기 보다는 순차적으로. 저는 급진적인 것을 힘들어 해요. 하나님이 제 성격에 맞게 조금씩 조금씩 만나주시고 변화시켜주셨어요.
도: 성격 얘기가 나와서 궁금하네요. MBTI가 뭐에요?
김: ISTJ에요.
도: 아~ 전 ESTJ 에요.
김: 전 치우쳤어요. I는 만점이구 STJ도 다 수치가 높아요.
현: 나도 ESTJ야~ 하하
김: ESTJ를 한국에서 많이 양성하려고 하는데 ISTJ가 가장 많데요.
(MBTI이야기중)
김: 전 I가 되게 싫었어요. 항상 모임에서도, 몇 명이 모인 자리에서는 관계를 잘 맺는데 무리 중에서는 힘들었어요. 계속 E가 되려고 노력했어요. 근데 3학년 때 동아리 후배들이 ‘언니 E같아요~’라고 하는데 처음엔 기뻤죠. 제 노력이 통한 것 같았어요. 근데 계속 마음 한구석이 슬픈거에요. 하나님께 물어봤더니 하나님께선 저를 I로 만드셨는데 자꾸만 E로 살아가려고 했다는 거에 대해서 제 존재가 슬퍼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그냥 I로 살자’고 다시 다짐해서 지금은 I가 좋아요.
도: I 수치가 높은 것 같지 않아보여요.
김: 그래요? 개발됐나.
도: 가족 이야기 좀 해주세요.
김: 저는.. 건강한 가정에서 자랐어요. 동아리에서 나누다 보면 깨어진 가정이 상당히 많더라구요. 놀랬어요. 우리 집은 안그러니까. 할머니 할아버지가 이북에서 내려오셨어요. 아빠랑은 상관 없는데, 이북쪽이 어떻냐면, 우리 가족을 상당히 잘 챙기세요. 우리 아빠도 가족에 대한 사랑이 강하세요. 엄마도 건강한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대학교 1학년 때 수련회 때 자기 상처를 돌아보는 기도회 시간을 가졌어요. 간사님께서 부모님께 받은 상처가 있다면 기도합시다 하셨는데 전 기도할 것이 없는거에요. 하나님이 살짝 원망스럽기도 했어요. 다른 친구들은 상처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제 삶은 평탄하기만 하고.. 몇 년 뒤에 그게 엄청난 축복이고 건강하게 자란 저의 자아 안에서 깨어진 가정들을 보면서 그런 가정에서 자란 영혼을 돌보라는 마음을 주신 것을 깨달았어요.
도: 동생(채선)이랑은 어때요?
김: 집에서 주접을 떨어요. 하하
현: 동생(채선)이 오늘 인터뷰 한다니까 “언니의 본 모습을 드러내”라고 하더라구.
김: 동생(채선)이랑은 성격이 달라요. 동생은 INFJ에요. 같이 살아가다 보니까 맞춰지더라구요. 맨날 제 방에서 둘이 같이 자요. 자기 전에 이런 저런 얘기도 많이 나눠요.
도: 화목하신 가정이시네요.
김: 세 살 차이 나서 싸우기도 많이 싸워요.
도: 살면서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은 뭐에요? 기쁜거나 슬픈거나.
김: 네팔로 작년에 단기 선교를 8개월 동안 갔다왔어요. 작년 오늘이 출국하던 날이었어요. 네팔에서의 삶이 기억에 남아요. 네팔 시골의 선교사님 MK 교사로 들어갔었는데 그때 기억이 많이 떠올라요. 너무 많아서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도: MK 교사를 하면 어떻게 하루를 보내나요?
김: 가정교사였어요. 사모님이랑 저랑 세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체조하고, 큐티 하고, 수업은 3,4시에 끝나요. 애들이랑 놀다가 마무리를 하고. 애들이 아직 어려요. 초등학교 2학년, 유치원, 유아원 아기들. 같이 놀아줬어요. 거기는 시골이라서 외국인이 없어요. 걔네들만 한국 애들이니까 현지 아이들의 수준이 많이 떨어져서 같이 놀기 힘들어요. 어쩔 수 없는 현실이죠. 애들이 한국말을 배울 수가 없잖아요. 마을학교의 커리큘럼이 너무 안좋아서 학교를 그만 두고 전 과목을 홈스쿨링 했어요. 애들과 놀고.
도: 보고싶으시겠어요.
김: 안식년이라서 들어왔어요. 하하~
김: 원래 전 MK에 관심이 없었어요. 사범대를 다니긴 하지만 애들한테는 관심이 없었어요. 일 중심적이지 사람한테는 별로 관심이 없거든요. 근데 동아리 하면서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단기선교를 생각을 했는데 MK교사 빼고 아무거나 다 되요 라고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께서 MK 교사로 가게 하신거에요. 원래 인도네시아로 결정했다가 다시 네팔로 했다가 안됐다가 하다가 결국은 MK교사가 되었어요.
도: IVF 덕에 삶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네요.
김: 네. 그런 셈이죠.
도: 거기 불교 학교 아니에요?
김: 맞아요. 그 와중에도 IVF는 잡초처럼 꿋꿋하게. 하하.
도: 거기 몇번 가봤어요~ 절도 있고, 산이고.
김: 네. 처음에 1학년 땐 되게 힘들었어요. 학교 안에 법당에서 수업을 했거든요. 작은 불상들이 가득 있고. 절을 시키는 교수님도 있었고. 전 그냥 앉아서 안했죠. 너무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알아듣겠더라구요. 엄청 감사한 것이, 제가 불교가 진리인 줄 알고 스님 되겠다고 난리쳤으면 머리도 깎고.. 부모님이 까무라치셨을꺼에요.
도: IVF가 많이 소중하시겠어요.
김: 네. 저의 마음의 고향 같아요. 네팔에 있었을 때에도. 제가 그 때는 광염교회 등록한 지 두달 밖에 안된 상태에서 갔거든요. 교회 관계는 부족했어요. 그 때 IVF를 심적으로 많이 의지하기도 하고. 그런데 의외로 등록한 지 두달 밖에 안된 광염교회 8기 친구들이 이메일도 보내주고 교회에서 제정으로도 기도로 중보 해주고. 그래서 참 감동받았어요.
도: 비전 이야기 해주세요.
김: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지진 않았어요.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는 건.. 교직 생활을 5-10년으로 하다가 MK 교사로 나가고 싶어요.
도: 임용고시 준비하시겠어요?
김: 네. 준비는 하고 있는데 제가 과연 교직을 10년 할 껀데 준비해야 하는건가 싶기도 하구요.
도: 많이 안뽑지 않아요?
김: 작년엔 39명 뽑았어요.
도: 교생은 어땠어요?
김:저는 교생 나가면서 교사에 대한 꿈이 커지는 것 같아요. 이과였는데 재수해서 문과 점수 맞춰 들어 온 과였어요. 하나님한테 항상 물어봤죠. 사범대학 가정교육과가 저와 무슨 상관이 있나요 하구요. MK 교사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이 길로 부르신 이유가 뭘까 항상 고민하고 있어요.
도: 10년 뒤엔 MK 교사가 되있겠네요? 그렇다면 특별히 정해놓은 나라가 있나요?
김: 선진국 보다는 후진국으로 가고 싶어요. 네팔도 도시에 가면 한국인들도 많고 한국학교도 있고. 현지 아이들을 모아서 1주일에 한 번씩 가르치기도 하구요. 네팔은 6시만 되면 사람들이 안돌아다녀요. 집에서 산 내려다보면 몇몇 집에 전기가 들어오는 걸 보면서, 빛이 많은 곳의 한 줄기 빛은 의미 없지만 어두운 곳에서는 한 줄기 빛이 상당히 의미가 크잖아요.
MK 교사로 가게 되면 한국인이 없는 곳으로 들어 가고 싶어요. 선교사님들이 아이들 교육 때문에 시골로 못 들어가시거든요. 수도에는 국제 학교가 있어서 한국 대학교 들어갈 때도 유리하게 작용하고. 지방에서는 한국어 교육을 받을 수 없고 로컬 학교는 수준이 떨어져서 못 다녀요. 아이들이 한국어도 못 익혀요.
그걸 보면 마음이 아파요.혜택이 없고 남들이 가지 않으려는 곳으로 가고 싶긴 한데, 제 마음은 그런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1년에도 몇 번씩 계획이 수정되고 바뀌고. 아직 만지시는 과정이니깐요.
대학교 1학년 때만 해도 선교 하면 거부 반응을 일으켰어요. 저는 그렇게 살기 싫어요 라고 하고 다녔지요. 1학년 때 수련회 끝나는 날 어떤 언니가 엄청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선교를 나간다는 거에요. 전 속으로 분노 했어요. 너무 무책임해 보였어요.
근데 그 뒤에 하나님께서 마음을 만져 주셔서 그 길이 축복된 길이라는 걸 알게 되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