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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2부 보물찾기… 그 첫번째 이야기(지민정편)

작성자: 지현도


    행복한 지민정

    2월 10일, 늦은 시간에도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도봉동 두 번째 여학사.
    맛있는 닭도리탕을 먹고 난 뒤, 지현도 간사님과 오늘의 주인공 지민정(9기)자매, 기자 도민영(10기)은 조용한 방에서 지민정 자매의 예수님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늘 함께 얼굴을 맞대고 사는(?) 사이지만, 막상 정식으로 인터뷰 시간을 가지니 어색함과 진지함, 쑥스러움이 한데 뒤엉켜 몇 분 동안은 분위기가 매우 굳어있었다. ^^;

    도민영(이하 도): 지금부터 시작할게요
    지민정(이하 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어색함을 깨트리는 웃음 소리와 함께,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지민정 자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

    part1 : 나의 예수님
    도 : 예수님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요?
    지 :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다니기 시작했는데, 실제로 주님을 만난 건 20살 여름 필리핀으로 단기 어학 연수를 갔을 때에요. 그 때 한인 교회에서 찬양하면서 하나님께서 마음을 만져주셨어요. 사실, 저는 20살에는 신앙이 성숙되지 않았어요. 맨날 애들 술 마시는데 다 따라갔었고, 엠티 오티 다 참석하고 그랬어요^^; 너무 재밌었거든요. 근데 필리핀 도착 첫날 토요일 저녁에 술자리가 있었는데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맞은편에 앉으신 분이 “이중에 교회 다니시는 분 손들어보세요.” 라고 하길래, “저요!” 손들었더니 “그럼 내일 봉고차로 데리러 가겠습니다~ 내일 다 같이 교회가요~”라고 하고는 또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술을 마셨었어요.^^; 그땐 아무 느낌도 없었어요. 그런데 맞은편에 앉으신 분이 “민정아, 교회 다니니? 언제부터 다녔어?”라고 물어보셨죠. “예, 다녀요. 모태신앙 이에요.” 라고 알딸딸(?)한 상태에서 대답했어요. 그 분도 모태신앙 이었어요. 그 때부터 우리는 급격하게 예수님을 만나 본 경험이 없는, 아직까지 예수님의 진한 사랑을 겪지 못한 아픔을 공감하면서 이야기하게 되었어요. 이런저런 대화 가운데 제가 당면하였지만 직시하고 있지는 않은 신앙적 문제를 찔러주니까, 마음이.. 좀.. 찔림을 많이 받고는 그 자리에서 울었어요^^; 모태신앙이 얼마나 축복된 것이고 또 얼마나 큰 선물인지 그 분이 가르쳐 주셨어요.

    도 : 술자리 가운데에서 은혜가 임하셨네요^^;
    지 : 네.^^; 그렇게 울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혹시 찬양팀 섬길 생각은 없니?”라고 아까 그분이 또 물어보셨어요. “저는 음치고, 신앙도 어리고, 아무튼 안되겠어요.”라고 거절을 했었어요. 하지만 다음날 주일 예배에 가서 찬양을 드리고 하나님이 마음을 만져주셔서 순종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찬양팀으로 섬기게 되었고, 그 때부터 평소에도 하나님을 묵상하는 삶을 조금씩 배워갔고 또 살게 되었어요.

    도 : ^^ 그러면, 하나님과는 어떻게 교제하시나요?
    지 : 일단 하루를 보면, 제일 먼저 아침에 일어나면 엎어져서 “오늘도 하루를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만나는 사람마다 저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는 삶을 살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를 드려요. 그 다음에 학교에 가서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아침의 학교 도서관 휴게실에서 자판기 커피를 뽑고 QT책을 펴요. 30분 정도 묵상을 하고 나서 하나님에게 편지를 쓰듯 하나님과 교제해요. “하나님, 오늘은 이러이러한 마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등등 하고 싶은 말을 다 써요. 이렇게 쓰다 보면 편지가 되더라구요.

    지현도(이하 현) : 편지를 쓴다구?
    지 : 네. 하나님께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다 쓰다 보면 편지를 쓴 것처럼 되더라구요. 육신의 아버지한테 하듯이 쭈욱 써내려가요.
         집에 돌아올 때도 하루를 마무리하는 기도를 해요. 기도가 안될 때는 찬양으로 대신 하기도 해요. 똑 같은 찬양 열 번씩 부르고^^; 평상시는 그렇게 신앙생활 해요.

    도 : 오늘은 어떤 편지를 썼는지 말해주실 수 있나요?
    지 : 오늘은 너무 바빠서 글로는 안썼구요^^; 최근에 쓴 건.. 제가 요새 시험(행정고시)를 앞두고 있어요. 이건 저의 비전과도 관계가 깊은데요. 이석진 목사님께서 느헤미야 설교를 하시면서 ‘어떤 대상을 위해서 울고 있는지’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나는 과연 누구를 위하여 내 능력을 사용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었던 걸 깨달았고, 그래서 최근에는 그런 부분에 중점을 두고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습니다.
    조목사님께서도, 누구나 아프리카에 부담을 가지고 있지만 최근에 그 마음이 더 커지고 있다고 하셨잖아요? 저도 원래 아프리카에 대해 관심이 있었는데, 최근에 부쩍 부담이 많이 생기고 또.. 돕고 싶은 마음도 생기더라구요.
    저는 경제를 공부하는데, 나중에 살아있는 그런 지식들로 아프리카를 돕고 싶은 마음이 계속 들었어요. 한비야씨의 책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라는 책도 읽고, 월드비전에 매달 얼마씩 내는 구호를 시작하기도 했어요. 목사님 칼럼 <아프리카, 아프리카>를 보고 참 감동을 받았어요.
    최근에는 이렇게 주변으로부터 저의 비전에 대해 큰 자극을 받았어요. 그래서 저의 능력이 아프리카를 위해 쓰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어요.


    행복한 도민영 기자

    대화는 점점 무르익어 가고, 20대 청년의 때를 가득 채우고 있는 지민정 자매의 비전에 대해 본격적으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Part.2 : 비전
    지 : 이번에 시험(행정고시) 칠 때 이석진 목사님께 안수기도를 받았어요. 그런데 그 기도 내용이, 저의 마음과 너무너무 똑같았어요. 저는 목사님께 말씀 드린 적 없는데 목사님께서 “민정이가 비전을 항상 선포를 하는 아이입니다. 이 비전을 성취하기 위해 행정고시라는 수단을 선택하였고 이를 이루기 위해 지금 나아갑니다.”라고 하시는 거에요. 저의 마음을 읽으셨나봐요. ^^

    자신이 받은 은혜를 헤아리며 울먹거리는 지민정 자매.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인 채, 하지만 미소 또한 주체할 수 없이 넘쳤습니다.

    지 : (계속) 너무 놀랐어요. 그리고 이번 시험도, 망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기도를 하고 갔는데.^^; 처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실망감으로 상당히 다운되어 있었는데, 저의 예상과는 다르게 막상 채점을 해보니까 몰랐던 것들을 다 맞게 해 주셨더라구요. ‘아, 이건 정말 내 힘으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네가 하는게 아니다’라는 걸 참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시더라구요. “그것 봐라, 네가 나 없이 되냐.”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참 부끄러웠어요^^; 저의 믿음의 약한 부분을 또 알게 하셨죠.
    이제 2차 시험을 준비하러 신림동에서 4개월간 생활하게 될 텐데, 그 4개월도 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실 걸 아니까..^^
        
    도 : 정말 은혜로 찍은걸 맞게 해주셨네요^^; 부럽습니다~
    비전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겠어요?

    지 : 처음에는 외교관이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국제통상전문가가 되고 싶었어요.    
    FTA 일선에 직접 참여도 하고 싶었고, 현실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강대국들하고만 교류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조금 바꾸고 싶어요. 특히 아프리카로 관심을 쏟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아프리카를 ‘착취’가 아닌 ‘상생’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그들과 활발한 교류를 펼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 역할에 쓰임 받고 싶었어요.
    수업시간에 매일경제 신문에서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무하마드 유누스의 기사를 보면서 참 자극을 받았어요. 유누스는 우리 교회에서 하는 것과 비슷한 일을 해요. 돈이나 쌀 같은 것을 무담보로 대출을 하는 거에요. 유누스는 방글라데시 사람인데, 처음 종자돈이 없어서 가난을 대물림하고 있는, 열심히 살아보려는 사람들에게 종자돈을 대출 해주는거죠.

    현 : sos뱅크랑 같은 거네. 한 번 종자돈을 대주면 그 이후에는 자립할 수 있으니까..
    지 : 네, 맞아요. 그 개념을 유누스는 교수를 하다가 직접 자신의 지식을 사용한 경우죠. 그 사실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게 되고, ‘파이낸셜 플레닛’이라는 NGO를 설립을 했어요. 국제통상직렬의 일을 하게 되면 그러한 비정부 단체나 UN같은 국제 기구에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하고싶었어요.
    또 저는 그러한 일들이 개인 사업이나 NGO가 아닌 국가 규모에서 정책적으로 실현될 수 있을지에 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나중에 북한과 통일이 되었을 때, 북한을 그런 방법으로 도울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아프리카에도 나아가서 그러한 모델들을 제시하고 실현시킬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어요.
    저는 아프리카에 경제와 보건, 교육의 측면이 가장 지원이 시급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교육적 측면은, 저희 어머니께서 교육에 관련된 일을 하시는데 어머니에게 배워서 제도적으로, 실제적으로 아프리카에 가서 실천 하면서 선교사적인 삶을 살고 싶어요. 이 두 가지가 다 병행 될 수 있을지는..^^; 그런 삶들을 살고 싶습니다.
    제가 너무 장황하게 이야기했나요? ^^;
    도 : 아니에요. 너무 멋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