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들이 안락함을 원합니다.
어떤 사람도
나는 불안한 상태에 있길 원한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모두가 안락하기를 소원합니다.
왜냐하면
안락함이 주는 특별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아둥바둥 살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 들을 필요가 없는,
어떤 사람에게도 갑질 당할 필요가 없는 그런 것
그것이 바로 안락함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첫 대면은
떠남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너는 네 친척과 아비의 집, 고향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이미 어느 정도 안락한 상태에 놓인
더 이상 방황할 필요가 없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홀연히 나타나 말씀하시기를
그곳을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왜 여기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떠나도록 하십니까?
바로 그것은
이 땅에서 우리가 가지는 믿음에는
필연적으로 ‘떠남’이라는 개념이 포함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이 우리가 영원히 머물 곳이라면
안락하고 안전한 삶을 이 땅에서 누리기 위해 우리는 모든 수를 동원해야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곳이 우리가 영원히 머무를 곳이 아니라.
언젠가는 떠나야할 임시적인 거처라면
우리가 영원하지 않은 것을 위해 다 투자하다가 오히려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에는 떠남의 개념이 포함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란
이 땅이 결코 영원치 않음을 받아들이며
영원한 본향
우리가 다시 돌아갈
하나님의 곁을 꿈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믿음에는 떠남의 개념이 포함됩니다.
가끔은
우리가 슬퍼서 위로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내게 영원하다고 생각된 것들이 갑작스레 사라질때
우리는 허무해집니다.
슬퍼집니다.
히지만
영원하지 않은 것들의 필연적 붕괴속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기쁨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지존하신 하나님의 찬란한 영원성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변치 않으시며
이 땅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소망을 가질 대상이 되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말 그대로
영존하시는 분이며
존재 자체가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의지하는 것들
믿고 있었던 것들,
사랑하고 있었던 것들이 무너질때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영원하지 않은 것들 너머 서 계시는 우리 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영원하지 않은 것들로부터의 떠남,
곧 믿음을 가지고 당신에게로 나아오는 귀한 자녀들을
두 팔 벌려 안아주실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 우리가 모든 소망을 걸고
현명한 인생을 살아가는 일이 있으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