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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is touching & changing Sri Lanka

작성자: 문정현

      집에 도착하자마자 씻고 일빠로 쓴다고 쓰다가 졸린 나머지 이불 속에 들어가서 자느라 재때 쓰지 못했네요..;; 그래서 지금 후다닥 올립니다.^-^;;

      8박9일의 스리랑카 일정이 끝나고 집에 도착했다. 선교를 가기 전에는 기도도 많이 못했고 또 내 자신이 많이 준비를 못한 부족함에 맘 한구석이 불편하면서도 그곳에서 이루실 하나님의 일들을 기대하면서 스리랑카로 출발하였다. 비행기로 약8시간이 걸려서 도착한 그곳.. 필리핀과 매우 흡사한 광경들이 눈앞에 펼쳐져서 그런지 그리 낮 설지 않고 오히려 친근하게만 느껴졌다. 후덥지근한 날씨,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그리고 들판과 야자수 등 열대 식물들, 그곳 특유의 향이랄까 것들이 나를 매우 설레게 하였다.

      집회첫날,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가 현지인이 할 때면 돌아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약간이나마 하나님이란 분을 알게 될 것을 생각하니 기분은 좋았다. 단지 현지인들의 10절 찬송을 못 알아 들었다는 것이 약간 아쉬움으로 다가왔다.ㅋㄷ 이곳 저곳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Believe in Jesus”, “Jesus loves you” 하며 돌아다니면서 한가지 배운 것이 있다. 그들의 도리도리 관습이다, 처음에는 못 알아 들어서 그런 줄 알았던 것이 실은 알았다는 뜻이었다니,,, 이것 때문에 재미있는 일도 많았었다. (한번은 김 집사님께서 설명하시는데 계속 도리도리 하니깐 계속 하신말씀을 반복하셨는데 나중에 내가 “집사님! 그거 알았다는 뜻 이잖아요. 도리도리” 그래서 맞다 하시면서 다음 집으로 간적이 있었다.) 내가 속해있던 팀이 부채춤 팀이었는데 누아바엘리야란 산간지역 빼고는 항상 땀 복을 입은 듯 땀이 많이 나서 한복 보다 내가 입고있었던 옷이 불편하고 꼭 쉬 한 바지 같았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_-;) 그래도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주님께 올려드리고 또 이  사람들에게 마음으로나마 주님을 느끼길 항상 바라며 열심히 하였다. 무언극 팀은 찡~할 정도로 공연을 할 때마다 감동을 주었고 댄스 팀도 항상 멋지게 공연하여 박수가 절로 나왔다. 찬양 팀 또한 매우 열심히 intro를 잘 이끌었고 한상오빠의 lalala송도 인상 깊었다.^-^ 그 곳에서 가장 인상 깊게 남는 것은 첫 날의 바닷가 집회 때 모인 많은 동네 사람들, 그리고 어느 교회에서 만난 말 못하는 아이들의 think you라는 말과 환영에 의미로 준 예쁜 hand made 꽃 목걸이, 6개월이 지난 지금도 복구할 엄두조차 내질 못해 방치해 두거나 간의로 만든 천막이나 부서진 건물에 나뭇잎으로 겨우 가리운 집들이 난무한 쯔나미 피해 지역들, 높은 고산지역에서 태어나서 차를 따고 나이가 들어 손이 나무껍질 같아져도 자신들의 identity에 대해선 전혀 의문을 갖지않던 그들, 일당 1250원을 위해 하루종일 차 잎을 따고, 매우 작고 지저분한 집에서 살며 아이를 낳고 또 그 아이가 차 잎을 따는 지루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인디안 타밀족들, 그 곳에서 오직 한 분의 한국 선교사님이 하시는 유치원 안에서 귀엽고 깨끗한 눈망울을 가진, 스리랑카에 미래가 될 것 이라고 그렇게 이끌어 달라고 주님께 눈물 흘리며 모두가 기도했던 그 곳 어린아이들과 오후 집회에 초대할 때 알았다면서 먼저 가라고 하길래 왜 그런가 했더니 다들 깨끗이 씻고 깨끗한 새 옷을 꺼내 입고 집회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목사님께서 안수하신 할머니와 내가 안고 같이 놀았던 아이와 그 외 같이 손잡고 통성 기도했던 사람들 등..), 교회가 주관하는 학사 안에 붙어있던 힌두신 들의 포스터와 그들을 믿는 학사생 들을 보면서 안타까웠던 마음들, 마지막 지역에서 집회 때 참석했던 많은 사람들(이들 또한 깨끗이 씻고 새 옷을 입고 왔었다. 찬양 팀 인도 때 우리 스리랑카팀 모두가 축복송을 불렀었다.), 항상 어디를 가든 우리를 웃음과 손 흔듦으로 반겼던 사람들(창 밖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우리를 볼 때마다 웃음과 hi, hello라는 인사말을 하며 손 흔들던 많은 사람들, 피곤하고 졸립다가도 다시 생기가 팍팍!!), 마지막 날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화장실에서 주님을 영접한 한 청소부 아주머니의 눈물, 그리고 현지음식들(아~주 매웠다 덕분에 잘 먹었어도 속이 좀 쓰리고 아팠다. 그분(아시죠 볼일 있잖아요)이 오시질 않아 고생을 했었다..;; 그래도 맛있게 잘 먹었다.^^  장로님께 사달라고 졸랐던 망고스틴, 코코넛(난 부코라고 불렀던 과일), 망고, 파인애플등 과일들이 참 맛있었다.

      이 모든 것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갔다. 아마 모두가 그럴 것이다(I’m sure and everybody should). 스리랑카만의 매력과 또 그 매력으로 인해 우리가 해야 할 일들도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돌아왔다.  그 곳에 있으면서 새록새록 떠오르던 총신대원 교수님께서 강연한 한국의 교회사 강의를 들은 말씀들 중에서 마음에서 떠나지 않던 우리나라에 처음 교회가 새워졌을 때에 신분제도에 의한 남자와 여자, 양반과 평민, 천민으로 칸을 나누어 예배 드렸던 우리 한국 교회가 그 칸이 무너지고 지금의 모두가 하나되는 교회가 됐듯이 카스트제도가 남아있는 그곳 또한 곧 한국이 밟았던 역사를 따라 신분 제도들이 없어지고 하나가 되는 은혜가, 또 몇m마다 있던 불상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교회와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도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를 기도하며 그곳의 주님을 알게 된 타밀족의 많은 어린이들이 주님의 보호 아래 ! 스리랑카라는 힌두교 국가가 이 아이들이 자랐을 때에는 좀더 나은 곳으로 변화되고 또 그 아이들이 그 나라의 희망과 미래가 되는, 큰 사람들이 되길 기도하면서 이번 선교를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해 매우 기쁘다. 내 핸드폰에 써 놓은 것과 같이 pray 4 Sri Lanka! 위의 모든 것들을 마음에 품고 기도할 것이다. 나 이외에도 이 나라를 품은 사람들 또한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이번 선교에서는 우리가 그들에게 기쁨과 주님의 은혜와 감동을 주는 것보다 우리가 받은 것들이 더 많았다. 우리를 이어 출발하는 말레이시아 팀들도 우리 못지않게 훌륭히 그곳에서 주님께 쓰임 받을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