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이 기억해야 할
한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다면
아이를 심심하게 만들기 입니다.
왜입니까?
심심함은 창조성
그리고 공부의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보통 놀이가 만들어지는 기원은
심심한 상황에서
즐거운 할 일들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또 공부를 시작하게 되는 것은
자극 없는 뇌에
새로운 기쁨을 주기 위한
자기의 심심함을 해소하기 위한 여정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아이들의 삶에
쉽게 자극을 줄 수 있는 놀잇거리가 너무 많다면
바꿔 말해 심심하지 않다면,
그들은 뭔가를 만들어낼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만들어진 놀이
소모적 삶에 자기를 스스로 헌신할 뿐입니다.
우리의 삶을 생각해보십시다.
미디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우리가 굉장히 확실한 정보
동영상만 보면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그런 행운이 있는 시대를 살아간다고 착각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복을 누리면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미디어,
우리 눈을 바로 사로 잡는 그 영상은
무엇인가를 한번에 와닿게 하고
쉽게 이해되게 하는 장점이 있지만
인생들을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형상
그의 창조성 다양성 진취성을 가진 자로
서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디어 중독 앞에
수동적인 수용자
그리고 단순한 컨텐츠 소비자로서
우리들의 삶을 빚어나갈 뿐입니다.
이 미디어들은
우리를 하나도 심심하지 않게 만들어가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자기 생각이 없는 자로 만듭니다.
혹은 누군가의 생각을 그저 전폭적으로 수용하는
선별적으로 진리에 접근하는,
그런 편협한 인간군상으로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텍스트
곧 책에 기록된 어떤 글들이
우리 삶에 주는 특별함은 무엇입니까?
컨텐츠의 속성상,
우리를 능동적 수용자,
연구하는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포함해서
활자로 적힌 글들은
우리에게 생각과 상상력
연구의 여지들을 남겨둡니다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그런 텍스트를 우리가 해석하려면
그 텍스트 너머의 어떤 것
텍스트가 말하지 않은 어떤 빈틈들을 붙들고
씨름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심심하고 비워진 그 공간으로 인해
자꾸 상상하게 됩니다.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분투함(Struggling)
그러한 생각과 상상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
나만의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입니다.
야곱이 창세기에서 얍복강가를 건너며
친히 주님과 씨름하면서
이스라엘이라 칭함 받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을 붙들면서
그의 삶이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저녁 시간
의도적으로 나를 즐겁게 하던 오락과 유튜브 인스타를 정지해봅니다.
이유 없이 먹거리를 찾던 연속적 삶을 멈추어 봅니다.
역시나 곧 허해집니다 심심해집니다.
그러나 그 심심함 속에서
기도를 시작합니다.
눈을 감으니
간구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붙들려진 영혼들이 많습니다.
생각할 틈 없었던
본문들에 대한 생각이 이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넉넉하고
풍성한 기쁨들이 삶에 자리잡기 시작합니다.
이윽고 깨닫게 됩니다
역시 다 채우는 게 답이 아니다
무조건 자극으로 심심함을 대체하는 것이 답이 아니다.
심심하면 안될것 같은
그런 강박들이
우리 삶을 사로 잡는 이때
끊임 없이 킬링 타임 컨텐츠
뭔가 즐거운 흥밋거리를 찾는 이때
당신의 삶을 심심하게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배부르게 가득 채우지 말고
덜 먹어 배고픈 상태를 즐기면 어떨까요
심심하고 허한 그때
빈공간이 가득한 텍스트
말씀들로 내 삶을 채워보면 어떨까요?
그때 우리는
인생의 진리 하나를 알게 될 것입니다
가득 채우려하면
오히려 채우지 못하지만
비우기 시작하면 채울수 있다
마지막 명제의 이 진리가
여러분과 저에게 놀라운 인생의 여정으로
인도하는 일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