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죽은 지 몇백 년이 지난 후,
이스라엘에게 한 가지 유산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놋뱀이었습니다.
광야에서 불뱀에 물린 사람들이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보기만 하면 살아났던 그 사건은
세월이 흐르며 사람들 사이에서 신화가 되었습니다.
신화가 된 순간부터
놋뱀은 점점 더 강력한 열망의 대상이 되었고
이스라엘은 그 앞에서 분향하며 복을 구했습니다.
유럽을 여행할 때,
저는 한 동상의 발 부분이 반질반질하게 닳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발을 만지면 복이 온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며 만져대는 동안
동상의 발은 결국 인간의 열망을 반영하는 흔적이 되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
인간이 반복해서 짓는 실수는 이것입니다.
본질이신 하나님 대신
우매하고 어리석은 대상을 붙잡는 일.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나님을 너희에게 선물로 가져다주겠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아 아버지를 보게 될 것이다.”
각종 신화와 우상 속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우리를 향해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나를 얻으라.
나를 마주하라.
내가 곧 선물이다.”
수천 년 후 히스기야는
사람들이 숭배하던 그 놋뱀을 깨뜨립니다.
그리고 선언합니다.
“이것은 느후스단이다.”
그저 놋덩어리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때로 우리를 위로했던 그 느후스단,
그 놋덩어리는
결국 놋덩어리일 뿐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우리가 그것에 제대로 이름을 붙이는 순간
비로소 올바른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없으면 안 될 것처럼 느껴지는 그것,
늘 붙잡고 의지해온 그것,
사실은 이렇게 말해야 할 대상일지 모릅니다.
“그는 신이 아니라, 그저 사람이다.”
“돈은 돈이다.
현실을 살아가게는 하지만
영원히 붙들고 있을 생명줄은 아니다.”
네이밍을 바로 하면,
하나님이 보입니다.
사물을 사물의 자리로 돌려놓고
사람을 사람의 자리에 두는 순간,
비로소 그 자리에 계셔야 할 유일한 분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당신의 느후스단은 무엇입니까?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