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부푼맘을 안고 인천공항으로 향했어요. 4번째 가는 선교인데도 유럽을 향한 저의 마음은 식을줄을 몰랐죠. 2006년에 격었던 나라도 있고 전혀 새로운 나라들도 있지만 그곳을 향해 기도하며 보낸 시간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예요. 전날 밤을 새고 온터라 비행기 안해서 꿈나라를 헤메다가 뚝딱 헬싱키에 도착했어요. 주님께선 우리에게 시작부터 많은 것을 누리게 하시려고 이코노미석을 비즈니스석으로 바꾸시는 기적을 베푸셨어요. 희원이의 용기있는 행동으로 우리는 한 외국인을 따라하며 티켓을 내고 라운지로 들어갔습니다.
목사님은 놀란 토끼눈으로 저희를 반기셨습니다. 아마 이 일은 라운지에 들어간 모든 청년들이 장차 라운지를 자유롭게 이용할정도로 크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축복일 거예요.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낸후 저희는 키예브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는 선교사님이 사모님과 함께 저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신학생들이 공부하는 센터로 저희를 인도하신 선교사님은 맛있는 식사로 저희를 한껏 대접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첫날 밤을 보내고 아침부터 그곳 신학센터를 위해 주위의 잡초를 뽑으며 첫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작은 일이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하는데 기쁨을 느꼇습니다. 아쉽게도 핀에어 1팀은 다시 2팀으로 나뉘어 사역을 감당하게 됐습니다. 저와 희원이는 몇몇 자매들과 남아 제초작업을 마무리하고 마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구호 활동을 했습니다. 힘든일을 하러간 동길이형네 팀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우리의 사역에 최선을 다했죠.
(하지만 동길이 형은 우크라이나 미녀와 사진을 찍고 있었다는 소문이 돕니다.)
사역을 마친 우리는 한식당에 모여 모든 팀들과 조우 할수 있었습니다. 하루 못 만났을 뿐인데 함께한 팀들과의 사이는 돈독해졌고 새로만난 팀들은 어찌나 반가운지…
그렇게 재회를 나눈후 우리는 신페로폴까지 먼 기차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신페로폴로 가는 기차는 바람도 안통하는 뜨거운 난로 같았습니다. 다들 씻지도 못하고 달려온 터라 더욱
힘든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그 안에서 찬양하고 웃으며 대화나누는 지체들을 통해 정말 악조건 가운데서도
감사하는 은혜를 누릴수 있었습니다. 힘겹게 기차여행을 마치고 버스로 우리가 향한곳은 니콜라스 2세의
여름별장이 있는 얄타였습니다. 이곳은 우리민족이 남한과 북한으로 갈리게된 얄타회담이 진행된 역사적인
장소였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다시는 강대국 또는 남의 힘에 눌려 우리의 주권을 발휘하지 못하고 분단을 강요받고 강제되는 일이 없도록 우리민족에게 힘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악자보리 교회에 도착한 우리는 우리와 성도님들의 헌금으로 이 교회가 지어졌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형제들은 앞다투어 짐을 옮기고 간단한 예배를 통해 우리의 사역을 준비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우리의 주식이될 토마토와 오이 밥을 먹으며 우크라이나에서도 힘을 낼수있었습니다. 또 지금까지도 가끔 기억의 남는 메론을 통해 객지에서의 무력함을 가볍게 떨칠수있었습니다. (목사님은 2개만 먹으라고 하셨지만 저는 아침부터 7씩 메론을 먹었어요 ^^) 9시부터 사역을 준비하기위해 예배와 큐티 나눔을 하고 오전사역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지현도 전도사님의 팀으로 오전에 마을 아파트 주위 쓰레기를 줍고 전도를 하러 갔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쓰레기를 주우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섬기고 전도를 하였습니다. 점심때도 남은 메론을 비우며 재충전을 한 우리는 오후에는 시계탑을 달 역에 가서 집회를 열었습니다. 긴장되는 첫공연이라 떨리는 마음이 컸지만 주님주신 담대함으로 무사히 제 맡은 무언극을 마칠수 있었습니다. 보면서 감동받았다는 격려의 말을 들었을 때 저도 감사함으로 눈물이 날것 같았죠. 집회를 끝마치고 우리는놀이터를 만들어주러 신승화 간사님 팀을 따라 갔습니다. 전역이후 선교때가 아니면 할 기회가 없는 삽질을 감사함으로 받은뒤 열심히 땅을 팠습니다. 모든 청년들은 각자 최선을 다해 땅을 파고 타이어를 색칠했습니다. (놀이터에서 보화라도 파낼 기세였어요 ^^;)
땀을흘리고 손이 아린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일하는 즐거움도 알려 주셨습니다. 늘 부모님 밑에서 공급받아 누리는 저로서는 색다른 경험이었죠.
저녁집회때 교회에서 다시 집회가 열렸습니다. 이번에는 직접 하지 않음에도 우리팀 아이들이 잘할까 전전긍긍하며 집회를 드렸습니다. 다행히도 어떤 연습때 보다도 훌륭하게 드라마를 해낸 아이들을 보며 감사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앞으로의 사역에대한 걱정도 이때 내려놓을수 있었어요. 그래서 이때 공연했던 아이들에게 더 고맙습니다.
이날밤 비록 여기저기서 코고는 소리로 깊은 잠을 이룰순 없었지만 마음가운데 평안함이 있어 다음날이 피곤치 않았습니다. 아침에 다시 예배를 드리고 오전사역으로 시계탑을 달아주러 갔습니다. 우리가 보기엔
정말 작은 시계인데도 악자보리 마을 시장님과 마을사람들은 매우 좋아해 주었습니다. 작은것에 감사할줄아는 이들의 모습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집회를 볼수있었습니다. 특히 우리드라마팀에대한 믿음이 생겨 마음껏 주변 전도에 힘쓸수 있었습니다. 오후에는 어린이와 노인 장애우를 위한 센터에 노동봉사를 갔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열심히 삽질을 했어요. 하지만 이곳에 삽은 이틀째 써도 익숙해지지 않는 삽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낙후되 보였던 우리나라 군대가 엄청 발전된 것 같이 느껴집니다.
저녁에는 양집사님의 특별 보급으로 다들 환호가운데 파티를 즐겼습니다. 선교의 매일매일이 기쁨인 것이 감사했어요.
곤히 자고 있는데 목사님께서 형제들을 긴급 착출하셨습니다. 자는척하는 형제 딴척하는 형제들고 있었지만 군대를 다녀온 형제위주로 우리는 11명의 특공대가 조직되었습니다. 눈꼽도 때지 못하고 눈감은 채로 식사를 마친 우리는 노동사역의 전방으로 파송되었습니다. 근교에 있는 작은 교회에 도착해 벽돌을 날라 담벼락 주위에 쌓아놓는 지극히 단순하고 힘들뿐인 일이었죠. 예비역들은 85또래 형님들의 지휘에 맞춰 조직적이고 능수능란하게 벽돌을 쌓았습니다. 말도안되는 괴력을 내며 1시간 반만에 우리는 모든일을 마쳤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엔 이중 반은 휴식인 것 같아요;;) 우리의 목표는 담벼락 쌓을 장소에 벽돌을 가져다 놓는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당당하게 누워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전도사님의 사모님도 깜짝 놀라시며 망설이시더니 잡초 뽑는일을 부탁하셨습니다. 점심때 즈음 응원차 오신 목사님과 양집사님은 잡초 뽑을 때가 아니라며 담벼락을 직접 쌓자는 새로운 임무를 내려주셨습니다. 우리는 응원용 아이스크림과 콜라에 힘입어 다시 작업에 박차를가했습니다. 비와서 작업이 중단되기까지 거의 모든 담벼락을 완성 시킬수있었고 현지 전도사님은 깜짝 놀라시며 정말 일잘하는 사람들이라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예배를 드리고 무언극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악자보리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돌아왔을 때 교회는 딴판으로 변해있었습니다. 입구에는 시멘트로된 길이 나있고 벽면마다 가득히 아름다운 벽화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우리만, 나만 열심히 일하고 왔다는 교만함을 반성하며 작품마다 깜짝 놀라며 주위를 구경했습니다. 반성의 시간을 가진뒤 다시 무언극 공연을 하고 겸손함으로 사역을 감당하기를 기도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마지막날 숙소를 깨끗이 정리하고 주일예배를 드렸습니다. 아쉽고 서운한 마음에 다들 송축하고 축복해주는 가운데 눈물을 머금었습니다. 정말 이 사람들을 통해 악자보리 마을을 바꾸시고 우크라이나 땅을 바꾸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다시 버스에 올랐습니다. 두 번째 겪는 기차여행은 많이 나아졌습니다. 그 더위나 답답함 찜찜함은 같은데도 모두다 한결 여유있는 표정이었습니다. 있는 참치 햄 고추장 라면 깻잎 햇반 김 참기름등을 모두 꺼내 호화로운 식사를 하고 만족한 가운데 잠을 청할수 있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난 우리는 다시 짐을 싸고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먼저 이동한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2차대전 당시 유대인들이 대량으로 학살당한 슬픈 역사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우리는 아우슈비츠 체험같은 오이마요를 식사로 하고(감사함이 부족하네요ㅠ) 수용소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영어로 설명해주는 직원의 말을 통역해 무전기로 알려주는 지체들을 보며 내게도 저런 달란트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영어공부의 필요성을 도전받았습니다. 참담한 아우슈비츠수용소의 내부와 거기서 있었던 일들을 들으며 즐거운 선교가운데도 웃음기가 잦아들었습니다. 신앙의 박해를 받았던 옛선조들과 일제점령기의 힘든 시절을 기억하며 가는 장소마다 기도를 드렸습니다.
모두가 기다리던 프라하에 도착한 우리는 좋은 우선 너무나도 좋은 숙소에 감사드렸습니다. 좋은 침대에서 잠을 자고 유럽식 식사를 배불리 먹은 후 오전 땅밟기를 출발했습니다. 정말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시려고 이땅에 보내시고 보여주신 부모님과 교회와 성도분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시간이었습니다. 맛있는 음식도 사먹고 멋진 배경으로 사진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급작스레 내린 폭우까지도 웃음과 즐거움으로 받을수 있었습니다. 오후에도 마찬가지로 더 넓은 지역을 대상으로 땅밟기를 하였습니다. 우리가 밟는 이땅들이 우리로 인해 복음화 되고 신앙이 회복되길 소원하였습니다. 저녁식사후에는 프라하 광장에서 집회를 열었습니다. 사물놀이가 유난히 널리널리 소리가 퍼지고 전도부채로 사람들을 전도하는 가운데 기쁨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어요.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고 그 사람이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자 거절당해도
상처받지 않고 기쁨으로 어떤 사람에게든 다가갈수 있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아쉽게도 축구경기를 관람하는 것이 방해받는다는 이유로 집회를 중지해야 되게 되었지만 하나님은 구경하던 남아공 크리스쳔들을 통해 모금된 돈으로 우리의 마음을 다독여 주셨습니다. 또한 우리는 북을치며 랩으로 사단이 우리를 방해할수없을을 선포하며 돌아갔습니다. 정말 통쾌한 경험이었어요.
다음날 우리는 다시 짐을 싸서 헝가리로 이동했습니다. 이곳에서도 부다성과 전망대등을 구경하며 하나님이 지으시고 운영하시는 넓은 세계에대해 생각할수있었습니다. 다시 다음날 우리는 헝가리어를 간단히 배웠습니다. 지금도 잊혀지지않는 말 ‘이쉬텔 세레테 데게’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헝가리땅을 위해 기도할때에 한번씩 되뇌곤 해요. 다시 지하철역으로 향한 우리는 엄청난 사람들이 오가는 가운데 버거킹 앞에서 집회를 가졌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호기심에 다가와 사물놀이 부채춤 워십 태권도 무언극 전도부채를 통해 복음의 메시지를 접했습니다.
다음날 우리는 비엔나로 행해 비엔나의 성을 구경하며 땅밟기를 했습니다. 양집사님께서 주신 개인당 5유로로 배를 채우고 웅장하고 멋진 건물들도 보고 유럽사람과 문화를 구경하며 돌아 다녔습니다. 교회안에서 사람들과 교제하는 가운데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신 시간 이었습니다.
저녁에는 아쉬운 마음으로 우크라이나 항공팀을 떠나보냈습니다. 지난 선교기간이 짧지 않았던 탓인지 곧 다시 볼수있음에도 허전하고 아쉬운 것 같습니다. 어쩌면 한국에서는 이렇게 매일 볼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아있는 우리들도 선교의 끝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각자의 생각을 정리하며 자유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음날 짐을 싸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로 향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기쁨과 많이 복을을 전하지 못한 아쉬움에 기분이 묘했습니다. 하지만 선교동안 받은 은혜와 우리가 사역한 땅에대한 자부심 큐티하고 말씀보는 좋은 습관을 선물로 받은 귀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길고 두서없는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구요. 형제들의 자매들을 아끼고 헌신하고 섬기며 캐리어를 끄는 마음을
표현한 영상 보여드리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