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제 강의 첫 시간을 가졌습니다.
강사가 창세기 2장 18절의 돕는 베필에 대한 이야기로 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강의 요점은 이미 가정생활 세미나에서 조목사님이 강의 했던 내용입니다.
‘돕는 베필은 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아내는 남편에게 부속된 어떤 것이 아니다.’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구약에 보면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돕는 자라는 뜻으로 쓰일 때 쓰셨기에 하나님이 우리의 종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 않느냐?
하는 내용입니다.
이 단어를 설명하면서 히브리어 원뜻이 Ezer라며 설명을 했습니다.
이 원뜻은 ‘위험을 보는 사람’이라는 뜻이랍니다.
돌아와서 찾아보았지만 어떡해서 그런 뜻이 나오는지 이해가 안돼서 다음 시간에 질문을 해볼 생각입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강의 내용이 아니라 강의를 들으면서 보여준 교실의 자매들입니다.
강사의 한마디가 떨어질 때마다 환호성을 합니다.
“Amen.”
“There you go(맞습니다).” 등등..
세상에서 가장 남편과 평등하게 지낸다고 생각한 미국 자매들의 반응에 사실 깜짝 놀랐습니다.
미국 가정들 지내는 거 보면 정말 남자들이 잘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가사 일을 돕는 것은 물론 음식을 잘하는 남편들을 많이 봤습니다.
그럼에도 아내들이 가지는 느낌은 그런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질문이 있냐고 해서 제가 얘기를 했습니다.
“남편들은 위험한 것 지키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하나님이 내가 못보는 위험을 보라고 아내를 주셨으니..”
주위에서 한 동안 웃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나오면서 한 40대 자매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 너희들 반응은 의외라고, 세상에서 남자들에게 가장 잘 대우받는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라고..”
자매가 하는 말이 남편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참 하더군요.
오늘 수업에서 돌아와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제 눈에 보기에 그렇게 극진히 하고 노력하는 가정들안에 서로 표현하지 않는 그 어떤 것이 있는가?
남편들은 정말 아내들에게 이렇게 환호성을 지를만큼 못하는가?
아내들은 혹시 남편의 사랑과 존귀를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닌가?
돌아와서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아내를 존귀하게 여기는지 더욱 열심히 표현하자. 아내가 느낄 수 있고 볼 수 있도록..”
“사랑하는 아내, 내가 얼마나 사랑하고 귀히 여기는지 귀 기울이고 느껴 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