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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학문, 그리고 신앙

작성자: 원재환

    이제 많은 젊은이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대학의 문에 들어서게 되는 계절입니다.
    대학은 기본적으로 학문을 하는 곳이고 삶을 준비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대학이 아니어도 사회에서 직업을 준비하는 곳은 많이 있으니
    대학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학문, 혹은 진리탐구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대학이나 학과를 결정해야 하는 크리스챤 젊은이들에게 학문과 신앙에 대해 몇 가지 나누고 싶어 글을 올립니다.
    새로 대학에 입학하는 새내기들, 그리고 이미 대학에 입학해 있으나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했거나 학과가 적성에 맞지 않아 고민하는 젊은이들, 그리고 학부형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본 칼럼은 광염교회 홈페이지 오른 쪽 하단 “세상속의 광염”에서 “원재환의 보물창고”에 게시되어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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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언 1:7)”
            
    학문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간단하지만 그리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먼저, 사전적 의미를 보면 ‘학문이란 배우고 익히는 것’이라 되어 있고,
    영어로는 ‘knowledge’, ‘learning process’, ‘study’ 등으로 표현하곤 합니다.
    한자를 보면 ’배울 학(學)에 물을 문(問)‘자로 배우고 묻는 것이 학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조금 감이 잡히는 것 같습니다.
    학문이란 결국 ’배우고자 끊임없이 묻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왜 배워야 할까요?
    그리고 어떤 자세로 배워야 할까요?
    우리의 신앙과 학문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해 오늘 같이 생각해 보고자합니다.

    첫째, 왜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저는 우리가 배워야하는 이유를 한 마디로 정의하라고 하면 ‘지혜(wisdom)를 얻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즘 대학교육의 문제점을 말하면서 대학에서 배운 것이 사회 혹은 회사에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저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대학에서는 물론 사회에서 필요한 지식도 가르쳐야 되겠지만, 근본적으로 대학교육의 목적은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잡하고 다양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어떻게 창의적으로 해결하는가를 배우는 것이지 현장에서 바로 사용 가능한 기능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지요.
    당장 회사에서 사용할 수 있는 지식이 필요하다면 실업계고등학교나 직업학교에서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수학에서 배우는 인수분해와 미분법, 적분법이 실생활에 어떻게 바로 적용될 수 있을까요?
    아마 거의 없을 것이지만, 우리는 그런 훈련을 통해 생각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그런데, 지혜에는 세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즉, 지혜에는 ‘넓이’, ‘깊이’, 그리고 ‘힘’이 있습니다.
    다양한 공부를 통해 폭넓은 지식을 가질 수 있고 이는 우리의 생각을 넓게 하고, 깊이 사고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결단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합니다.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초등교육,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중등교육, 그리고 대학에서 배우는 고등교육은 모두 분야에 상관없이 우리에게 삶의 지혜를 주는 것입니다.
    학문을 평생 업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은 대학원 교육을 통해 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가져야 되겠지요.
    원래 서양은 학문을 분석적(analytic)으로 하고 동양은 종합적(synthetic)으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서양은 귀납적 방법론(구체적인 사실로부터 일반적인 결론을 도출함)으로 학문을 하고,
    동양은 연역적 방법론(일반적인 사실로부터 구체적 결론을 도출함)으로 학문을 합니다.
    이러한 전통은 의학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동양의학인 한의학에서는 인체를 우주와 같이 전체적으로 보고 특정한 질병이 발생하면 특정부위를 치료하기보다는 전체적인 기의 흐름을 좋게 하여 치료하고자 하나, 서양의학은 구체적인 질병을 먼저 치료하여 몸의 전체적인 균형을 잡으려 한다는 특징이 있지요.
    그래서 서양의 방법론은 학문을 매우 세분화(구체화)하여 사회과학, 자연과학, 인문학 등으로 나누고, 사회과학은 다시 경영학, 법학, 사회학, 심리학 등으로, 자연과학은 공학과 물리 화학 생물 등 기초과학으로, 인문학은 역사학, 어문학 등으로 세분하고 있는 데,
    이는 지혜의 깊이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면도 있으나 지혜의 넓이측면에서는 문제점도 많다고 보여집니다.
    즉, 우리가 어느 한 분야를 전공할 경우 현상의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만 보게되는 우를 범할 수 있고 때로 편협해 질 수 있는 소지가 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서 우리는 동양적인 학문 방법, 구체적으로 우리 조상들이 선비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강조해 온, 인문과 철학, 그리고 예술의 조화를 깊이 생각 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전공과 관계없이 최소한 철학, 역사학, 문학, 예술에 대한 다양한 공부가 얼마나 필요한 지 인식하고 배움에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학문하는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세상에서 배우는 학문들이 아무리 고등학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초등학문’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데, 우리가 얼마나 겸손해야 하는 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칫 우리가 공부를 많이 하다 보면 그렇지 못한 사람을 무시하려고 하고 우월감에 빠질 수도 있겠지요.
    이는 학문하는 사람이 철저히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 ‘너 자신을 알라’, 이 모든 말들은 우리가 배우면 배울수록 낮아지고 겸손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학문을 하되,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자세가 필요하다고 선조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끝없는 호기심(curiosoty)을 가질 것,
    둘째 외로움(solitude)을 즐길 줄 알 것,
    셋째, 긍지(pride)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하고 있는 학문과 신앙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첫째, 학문하는 사람은 모든 사건에 대해 ‘역사적, 신앙적 해석‘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라크 전쟁과 북한의 핵문제를 일회성 사건, 사고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갖는 의미와 하나님의 섭리를 유추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것이 학문한 사람들의 특징이고 소명인 것입니다.
    이라크를 둘러 싼 원유 쟁탈과 중동에서의 세력균형,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깊이 묵상해 야 할 것이고, 북핵 문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일본과 러시아, 중국과 미국 등 열강들의 이해관계는 무엇이고, 남북한 사이의 통일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복음전파 측면에서 하나님의 지상명령 수행과의 관련성과 이 시대 통일을 향한 교회의 역할에 대한 깊은 인식과 이해가 필요하겠지요.
    이것이 바로 역사인식이요, 신앙적 해석이라 생각합니다.

    둘째, 우리는 자기 분야의 학문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비밀을 찾아가야 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창조는 오직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우리는 창조된 것을 발견하는 것뿐이지요.
    어떠한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기술개발도 세상의 눈으로는 창조일지 모르나 신앙의 눈으로 보면 창조주의 비밀을 ’발견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생물학도는 생명과학의 신비를 벗겨 내고 불치병을 치료할 신약개발을 통해, 그리고 식량혁명을 통해 병자와 약자들을 돕는다면 이는 좋은 치료사역이 될 것이고,
    경제학도는 건전하고 효율적인 시장 메커니즘을 개발하고 분배의 정의를 구현하여 경제적 약자를 돕고 골고루 잘 사는 사회를 만들도록 기여한다면 이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실 사회구원이요 언약의 성취가 되리라 믿습니다.
    이렇게 볼 때 어느 학문 분야든 분명 ’초월‘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세상에 ’내재‘하도록 기여할 수 있음을 이해할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우리 기독교만이 가지고 있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신비인 것입니다.

    또한, 학문하는 우리들은 확실한 ’기독교 세계관‘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
    창조‘와 ‘타락’, 그리고 ’구원‘으로 대변되는 기독교 세계관은 다른 어떤 종교와도 분명히 구별이 되는 것이지요.
    창조와 구원에 대한 분명한 믿음과 인식이 없다면 우리의 학문은 단지 삶의 도구로 전락할 것이고 나의 생존을 위한 세속적인 방편으로만 이용될 것입니다.
    즉, 나의 학문과 배움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창조의 비밀을 세상에 알리고 불신자들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에 대한 비젼을 구체화하고 마음에 품어야 하는 시기가 청년의 시기이고 따라서 청년의 시기는 인생에서 가장중요한 시기라고 말하는 데 저는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희망인 청년들에게 당부하고 싶습니다.
    직업에 귀천이 없듯이 학문분야에도 귀천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인기학과와 비인기학과라는 유치하고 편협한 세속적 분류는 타파해야 합니다.
    신학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거룩한 학문이고 그 외의 학문은 세속적인 학문이라는 이분법적 인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이런 오해가 때로는 소명의식도 없는 사람이 하던 공부, 하던 일 다 집어치우고 신학교 가게 만드는 부작용을 이 사회에 만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 마음속에 얼마나 확신 있게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 분의 가르침을 성령의 도움으로 세상에 구현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학문분야에 상관없이, 직업에 상관없이 내가 가진 달란트(talent)를 가지고 내가 배운 학문을 가지고 내가 속해 있는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느냐, 그것이 문제의 핵심인 것입니다.
    학문을 깊이 연구한 사도 바울이 신약성경의 2/3이상을 기록했다는 사실은 우리의 배움과 학문이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크게 사용될 수 있는 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그런데, 바로 오늘, 아니 바로 지금,
    귀하고 귀한 청년의 시기에 당신은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그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나의 이해관계의 틀에서 학문과 대학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의 큰 틀에서 내가 어떻게 사용될 지 깊이 묵상해야 할 때가 바로 청년의 시기입니다.
    고로 신앙의 눈으로 학문을 볼 수 있고, 학문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광염 청년, 학생여러분 모두 주님이 사용하시는
    크고, 깨끗하고, 성령으로 꽉 차 있는 좋은 질그릇들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Ch.1.(2007-1-4)